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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용 Jan 13. 2024

아시아 화교 이야기

7. 리콴유의 눈물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인지 싱가포르에서인지  정확히 기억을 못 하지만  TV에서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 수상이 그의 젊은 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은 1965년 8 월 싱가포르의 독립을 선언하는 자리에서의 일이다. 한 국가가 독립을 선언하는 자리는 감개가 무량한 자리이니까  국가지도자가 눈물을 흘리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리콴유의  눈물은 감개의 눈물이 아니라 서러워서  우는 눈물이었다. 싱가포르 독립의 날이 바로 말레이 연방에서 싱가포르가 쫓겨난 날이다. 그 쫓겨난 일이 너무너무 속상해서 우는 것이다. 이제 싱가포르는 누가 지켜줄 것인가?

자원도 없고,  군대도 없고,  땅도 손바닥만 한 섬이 고작이고, 인구도 얼마 안 되는 데다가 구성원이 여러 민족으로 나뉘어있어 서로 싸움질이나 하는 한심한 나라이다. 독립을 하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언제라도 코앞에 붙어있는 거대한 나라 인도네시아가 손만 뻗히면 한순간에 훌쩍 목구멍으로 집어삼켜질 텐데. 더욱이 한심한 것은 식수도 없다. 연방에 붙어 있으면 전기와 식수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져다 먹는데 이제 연방이 아니니 언제라도 나 몰라라 하면 우리 불쌍한 국민은 어쩌란 말인가? 연방 축출을 통보받기 이전에 말레이시아  압둘 라만 총리를 찾아가 제발 한 번만 재고해달라고 간청을 했었으나 냉정히 거절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최후통첩을 받고 더 이상 리더십에 공백은 없어야 하겠기로 눈물의 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자 그러면 여기서 말레이시아 쪽에서 한번 상황을 조명해보자.

말라야 연방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1957년에 여러 민족 간에 인구 구성비를 보니 말레이인 인구가 겨우 50%에 지나지 않았다. 영국이 자기들이 필요한 노동력을 중국과 인도에서 엄청 들여왔다.

이제 영국이 물러가는 마당에 이들이 고용한 그들도 돌아가야 하는데 자기들 조국이 안정이 안되어 있어 돌아가기를 꺼려하며  이제나 저제나 돌아갈 때를 기다리다가 그냥 주저앉는 사람이 늘어났다. 말레이 정부 쪽에서 상황을 분석해 보니 이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이 누구 땅인데? 여기는 대대손손 말레이인이 살던 땅인데 외래인이 들어와 터를 닦아 놓고 주인 행세를 해? 특히 중국인들은 도시에 들어와 살면서 단단한 상업적 기반을 닦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싱가포르가  1963년에 말라야 연방에 회원으로 들어와 있다. 압둘 라만 말레이시아 총리는 경제력을 날로  빠르게 다져가고 있는 중국인들이 언젠가는 말레이인들을  누르고 주인으로 등극하리라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에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늘 걱정하던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하여금 싱가포르 문제를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빌미로 이용했다.

1964 년에 싱가포르에서 예언자 무하마드 탄생일에  무슬림인 말레이인들이 축하 거리행진을 하고 데  일단의 중국인과의 충돌이 일어났다. 충돌의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되고 있는데 이유가 어찌 되었건 충돌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건이  아니겠는가. 무려 11일 동안 전쟁을 하듯 일이 벌어졌는데 상당수의 사상자가 생겼고 많은 건물이 불탔다. 압둘 라만 총리는 이 사건을   싱가포르의 연방회원국 자격을 박탈하는 빌미로 이용했다. 중국인 절대다수인 골칫덩어리 싱가포르를 외과수술 하듯 떼어 버린 것이다.

리콴유.

1923년생,  중국 하카(客家) 출신 집안, 이민 4세로  영국령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중국인 가문에서 낳고 자랐다. 전쟁이 끝난 후 런던 정경대학에서 수학하고 케임브리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전설적인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싱가포르로 돌아온 후 인민행동당(Peaple Action Party)이라는 당을 창당하고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59년 싱가포르  주민선거에서 인민행동당이 43석의 의회 정족수의 41석을 얻고 당수인 리콴유가 자치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그로부터 그가 정치를 그만두고 물러난 1990년까지 무려 31년을 통치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리센룽(Lee Hsien Loong ;李顯龍)이 현 총리이다.

그에 대한 숱한 찬사와  또 독재자란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그런 독재자라면 독재도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수긍도 할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싱가포르에서 길에 침을 뱉거나  길에서 담배를 피우면,  또 껌을 씹다가 길에 뱉거나 하면  체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큰 금액의 벌금을 물고야 풀려날 것이다. 70년대인가  80년대인가  싱가포르 호텔에서 싱가포르 티브이를 보다가 리콴유 수상이 나와서 무슨 연설 같은 것을 하길래  무슨 얘기를 하는가 하고 집중해 보고 있었는데 기껏 하는 소리가 어느 어느 동네를 지나가는데 쓰레기를 방치해 놓았더라 하는 얘기였다. 관료적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총리가 무슨 할 말이 없어 저런 쪼잔한 얘기를 하고 있나'하고 참으로 이상해했다.

당시 인구가 300만이 안되었던  도시국가 싱가포르로서는  쓰레기  방치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이해 못 할 수도 있었고 이콴유 총리가 한 가정의 가장 같은 분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말라야 연방에서 쫓겨나고 좌절하여 서러워했던 대책 없던 섬나라 약소국가를 오늘날 개인소득이 세계 6위(53,000불 이상)의 나라가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가 우려했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침공도 안 받았고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없어 굶지나  않을까  했던 우려도 없이 선진 싱가포르를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중국에서 이주하여 간 화인이 이루어 놓은 개가가 더 눈에 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중국인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물론 유럽의 대항해시대에 스페인은 남미에 스페인어를 쓰는 많은 나라를 세웠고, 영국도 아프리카에 그들 언어를 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그보다 더한 아메리카, 캐나다를 세웠고, 고구려인도 만주땅에 발해도 세웠지만,  아시아의 중국인도 싱가포르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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