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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용 Jan 14. 2024

아시아 화교 이야기

12. 우(吳) 씨네의 부침(浮浸)          


태국 방 나에서 통조림 공장을 하는 우 씨 가문의 큰 딸 와타나는 스리랑카로부터  주문받은 사딘(sardin) 통조림 다섯 컨테이너를  45일 만에 선적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원재료 확보가 가장 큰 난제이고, 다음이 생산,  적어도 인력 100명은 생산 라인에 투입하여야 한다. 어쩌면 그 보다 더 투입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이 익숙지 않은 잡부들을 뽑아 그들 일손이 어떤 생산성을 보여 줄지는 미지수다. 또한 수출업무다. 포장에서부터 수출허가, 은행업무, 선적 등 모르는 일이 산더미다. 그리고 스리랑카의 위생 관련의 규정도 아는 바 없다. 듣기로 위생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전부 반품이 되어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망하고 말 것이다. 자신 있게 하겠노라고 한 것이 잘못한 게 아닌가 하고 후회되기도 한다. ‘아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남동생  둘을 닦달하여 생산은 그들 둘이 어떻게 하든지 책임을 지게 하고 나는 원재료를 책임지자. 와타나는 앙실라(Angsila)의 기존 거래처와 람차방(Lamchabang)의 거래처,  방센(Bangsen)의 신규 거래처들을 만나 물량 확보에 대하여  논의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상황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다. 와타나는 진즉 우리 삼 남매로는 사업을  크게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던 중 은행업무를 보러 은행에 들렀을 때 다른 업체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났다. 그가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

"스탠더드의 와타나 사장님 아니십니까?" "아,  예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의 이름이 투비 삭이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투비삭이 선박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와타나가 스리랑카에서의 주문 이야기를 하고 선적 등의 수출절차  얘기를 하면서 의견을 물으니 그는 단박에,

"그런 일이라면 제가 맡아서 하지요."라고 한다.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떻게 하고요?" "어차피 그만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한테 맡겨 주세요."

와타나가 당황해서 머뭇 거렸다. "저희는 급여를 충분히 드릴 입장이 아닌데요"

"급여요? 그냥 교통비만 주셔도 돼요.  제가 알기로 스탠더드 공장이 방나(Bangna)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도 마침 그 근처에 살아요.  제가 일을 잘해서 회사가 커지면 인센티브로  그때 주시면 되지요."

그렇게 되어 투비삭이 영업부장으로 들어왔다. 투비삭은 부두의 포딩 일은 물론 일반 사회에서의 인맥이 보통 아니다. 하카(客家) 출신 화인의 인맥은 남다르게 공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투비삭의 아버지가  광둥 성 출신 하카인이다. 무엇보다도 영어를 잘한다.

마흔 살을 훨씬 넘긴 투비삭은 일찍이 결혼을 한 후  부인, 아들과 함께  미국에 가서 살았는데  간지  2년 만에 투비삭 혼자 돌아왔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고 한다. 법적으로 이혼이 완료된 것은 아닐지 몰라도 그는 이혼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리랑카의 첫 번째 오더는 말끔히 완료되었다. 원재료 공급선이 이번 일로  확고하게 조직이 되었고, 그쪽 사정을 잘 알게 되어 터무니없는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까짓 다섯 컨테이너는 일도 아니라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스리랑카의 도매시장 페타마켓의 딜러들이 하나 둘 찾아왔고 주문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금문제는 투비삭이 하카  화인들의 자금을 빌려 해결했다. 투비삭은 국내 마트와의 거래도 뚫어 내어 태국의 웬만한 마트 진열대에 스탠더드 생선 통조림을 쉽게 볼 수 있게도  되었다. 

45일 동안에 다섯 컨테이너를 가지고 전전긍긍하던 일은 옛날 일이 되었고 이제는 하루에 한  컨테이너 물량 까지도 가능하도록 준비해야 했다. 공장 조업인원도 200명을 넘어섰다.

스탠더드 생선 통조림은 스리랑카의 시골 조그만 잡화 가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그렇게 사업이 커지게 된 이유 중에 투비삭의 기여는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특히 자금의 마련과 국내 영업의 확장은 절대적으로 그의 덕이었다. 투비삭은 서른이 훨씬 넘어서도 결혼을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 와타나에 대한 마음을 간간히  내 비추고 있지만 와타나는 눈치를 채고 있는지 아닌지도 가늠할 수 없도록 전혀 반응이 없다.

하기야 마흔을  훌쩍 넘어 있는 그의 나이와 미국에 있는 부인과 아이와의 관계도 깨끗이 정리되어 있지도 않은 두리뭉실한 상태에서  내놓고 프러포즈를 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투비삭 없이 사업을 이끌어 나가기는 어렵다고 하는 인식은 외타나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스리랑카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아짓'이란 고객이 페타시장의 몇 명과 짜고 와타나 선적 컨테이너 20개를 위생 검사에서 불합격시켰다. 애당초 한꺼번에 스무  컨테이너의 대량 물량을 선 듯 주문한 것에 의심을 품고 여러 가지로 알아보았어야 했다. 처음 거래의 고객이 상식을 넘어선 물량을 주문한 것은 의심을 했어야 했던 것이다.

위생검사에서 불합격시키면 통관이 안되고 반품이 되어야 한다. 스무 컨테이너의 물량을 태국으로 가져오면 폐기해야 할 것인데 운송비, 폐기비용 등 무슨 대책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신용을 잃게  될 것이고 앞으로의 사업은 불가할 것이다. 와타나는 즉시 스리랑카로 날아왔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내가 와타나를  처음 만난 때는 일 년 전쯤 골루피티아에 있는 우리 대리점에서였는데 대리점 사장은 기타 사업으로 태국 와타나 회사에서 통조림을 수입하여 유통시키고 있었다. 첫인상이 시원시원한 사내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행동거지가 생긴 모습처럼 거침없어 보였다. 태국에 오면 꼭 연락 바란다고 하여

한번 연락을 했더니 투비삭과 함께 만나러 왔다. 공장 레이아웃  좀 봐 달라고 하여 그들의

공장을 가서 라인을 점검했다. 문제가 많았다. 물 흐르듯 공정이 유연하게 흘러야 하는데 도처에서 막혀 생산성이 떨어지지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위생설비는 거의 고려치 않아 냄새가 많이 나고 있었다. 공장의 작업 흐름은 어떤 제조 공정이나 비슷한 것이어서 상식적인 플로우를 포착하고  라인을 다시 잡아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대단히 만족하여 내가 준 레이아웃으로  공정을  바꾸어 공사를 하겠다고 한다. 보일러도 교체하고 숫자도 늘리고 무엇보다 깨끗한 환경의 작업대를 스테인 레스 판으로 교체하고 컨베이어 이송장치를 설치하여 조업의 속도를 빠르게 했다.  기존 콘크리트 탱크를 전부 스테인리스 스틸로 교체하고 세척장의 펌프와 배관도 교체토록 했다. 환풍기  설치로 냄새제거, 무엇 보다도 바닥 콘크리트는 다시 공사하고 내수 페인트로 마감, 급수와 폐수처리 설비 등등을 지적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와타나는 정말로 폭삭 망하게 생겼다. 스무 컨테이너이면 60만 불 정도인데, 이 정도 금액이면 대책조차 세울 수 없는 큰 금액이다. 원재료 공급자들로부터 외상으로 들여온 생선값은 선적과 동시에 갚아야 할 금액이다. 단 하루라도 늦게 지불하는 일이 생기면 그날부터 신용은 추락하고 통조림 사업은 접어야 할 처지다.

내가 스리랑카 페타마켓의 타밀 커뮤니티를 통하여 실상을 알아보니 전통적으로  생선통조림을 유통해왔던  타밀족 사람들의  네트워크 사람들이 아니고  싱할라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사기를 친 것이다. 회계사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안경점 체인을 하고 있는 사람의 아들 녀석도 개입되어 있고,  대체적으로 돈도 좀 있는 젊은 친구들이 집단으로  벌린 소행이다.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큰 물량을 주문했던 것이 실수였던 것 같았다. 타밀사람들과 무슬림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연고도 없는 이들이  대량으로 들여다 팔아보려고 한 것이 그들에게 먹힐 일이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선적이 완료되었다.

어떤 친구 하나가 아이디어를  냈다. 위생검사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를 동원하여 위생검사 불합격을 시켜 반품시키자 하는 기발한 생각이다. 신용장 조건대로 위생검사에 불합격을 받게 되면 지불정지 클레임을 청구할 수 있다. 은행은 클레임을 걸어오자 지불을 보류하였다.

그런데 이 욕심 많은 젊은 애송이들은 실수를 저질렀다. 불합격된 화물을 반품도 하지 않고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고 동물사료로 빼내어 일반에 유통시켰다.

그동안 물품대금을 지불하지 못한 와타나는 채권자들의 고소로 형사 입건이 되어 태국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죄목은 무엇인지는 파악도 못 했는데 일단 사기죄 같은 것이리라.

와타나가 유치장에 있는 동안 투비삭이 큰 일을 저질렀다. 해군에 돼지고기 통조림 납품을 성공시켰다. 이어서 육군,  공군에도 군납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투비삭이 감옥에 면회를 와서  전했다. 와타나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납품업자들이 와타나를 일단 감옥에서 꺼내놓고 보자고 결정을 하여 와타나는 풀려 나왔다. 투비삭이 그들을  설득시킨 것이다.

회사의 대표가 일단 나와서 자유로워야 스리랑카 건도 해결 할 것이고, 그리고 돈을 벌 기회를 가져야 돈을 벌어 당신들 돈을 갚을 것 아닌가 하고 설득시킨 것이 주효했다.

내가 페타마켓에서 얻은 정보가  와타나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주었다.

사료로 빼낸 물건을 유통시켰다는 것은 클레임 청구에서 귀책사유가 되어  양국의 은행 간 거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선적서류의 선하증권을 처리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태국 은행에서 담당자가 고객에 알리지 않고 홀드하고 있는 것은 불법이다.

와타나는 지속적으로 은행에 서류를 요구하였으나 은행에서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발뺌을 하고 있었는데 와타나가 담당자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보았다.

담당자가 순간적으로 자리를 비운사이 와타나는 재빨리 서류를 들고 튀었다. 결국 와타나는 선적한 금액전액을 받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스리랑카 은행과 태국은행의 문제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스리랑카 젊은 애송이들은 은행으로부터 물품대금을 갚으라는 최고장을 받았다.

그 이후 와타나는 스리랑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선적서류를 들고 튄 와타나의 모험이야기는 이미 결혼을 한  투비삭과 와타나 부부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한테 들려준 이야기다.

이 두 사람은  내가 태국에서 플랜트 수출의 고객을 못 만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 돈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연결하여 주려고 많이 애썼다.

내가 수주 활동  일로 태국을 들락거리고 있을 때  내 일정을 연락해 놓으면 묵고 있는 호텔에 차 한 대를 가져다 놓고 자동차 열쇠를 프런트에 맡겨 놓곤 했다.

그리고 늘 나보고 태국에서 있을 동안 쓸 태국 돈은 충분히 있느냐고 묻곤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는 곳은 대체적으로 거리  음식이다. 그럴듯한 식당으로 초대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중국인들에게 배어 있는 내핍 생활의 단면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투비삭이 누구한테 받은 영문 편지 한 통을 나에게 가져왔다. 편지 내용이 자기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전직 군 장성인데 숨겨놓은 정치자금 2천 만불을 가지고 있는데 이 돈을 태국으로 송금해 놓고 싶다면서 귀하의 계좌 번호를 주면 즉시 송금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중 몇 퍼센트를 당신에게 주겠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편지는 한국에서도 받은 사람이 많고 여기에 사기당한 사람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투비삭이  받았을 때는 이런 사기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초기여서 순진한  투비삭은  이것을 믿고 계좌 번호를 알려 주기를  주장했다.

와타나가 기가 막혀 다투다가 미스터초이한테 의견을 물어보자고 하면서 나에게 그 편지를 가져왔다. 나는 지금도 그 편지의 내용을 철저히 믿으면서 흥분하고 있었던 투비삭의 표정을 떠 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와타나, 나의 젊은 날의 기억들이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와타나가 유치장에 들어갔을 때 얘기다. 어떤 나이가 든 수감자가 다가와 와타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유치장 경험이 없는 와타나가 당황해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더니 와타나 손을 잡아 손금을 보았다. 그리고 와타나에게 하는 말, "여기 계실 동안 제가 모든 수발을 들겠습니다" 와타나가 당황하여, "같은 수감자끼리  무슨 수발?" "무슨 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한 달 이내에  나가실 겁니다, 나가시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고  엄청난 돈이 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저를 잊지만 마십시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하녀가 되어 세숫대야에 물을 떠 와 발을 씻기고 모든 소소한 수발을  들었다고 한다. 그녀 말대로 와타나는 한 달 후에 나왔고, 와타나가 유치장에 있는 동안 투비삭이 군납 오더를 땄고, 스리랑카에서 클레임을 걸어 받지 못했던 돈도 아슬아슬하게  운 좋게도 받게 되었다. 와타나는 다른 중국인들과는 달리  풍수라든가 사주등을  믿는 성향의 사람은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쨌던지 공교롭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스리랑카에서 어려움을 겪고 귀국하던 때 그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위하여 태국에서 자리를 잡을 사업을 찾느냐고 애를 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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