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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용 Feb 29. 2024

아시아 화교이야기

16. 윈난(雲南)과 담배     

  주(周)가 표정을 살짝 난처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바꾸고 통역 아가씨에게 무엇인지를 얘기하는데 아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얼굴을 돌린다.

"저분이  얘기하기를 중국인들은 사업 얘기가 잘 되면  증표로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답니다. 오늘 참석 못한 자기들 사장과 은행 사람등에게 적으나마 선물을 마련하는 게 여러 모로 좋을 듯하답니다."

"아. 그래요? 내가  올 때  술 몇 병을 가져왔는데 그거로는  안 되나요? 내가 결례를 했나요?"

아가씨가 그대로 통역하여 전했다. 주의 표정이 약간 실망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조금 위압적인 태도가 되면서  술보다는 담배를 선호하니 담배를 얼마간 사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담배?  담배라면 뭐' 약간은  안심하며, "그렇게 하죠. 어디서 사면 되나요?" "걱정 마세요.  우리가 잘 아는 상점이 있습니다.  그리로 가시죠."

그리고 그들 모두가 웅성거리며 서두른다. 그때 사이먼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았다.

그들이 사이먼을 의식하며 거리를 두려고 하는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으나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분위기다.

  사이먼도 그들이 선물 얘기를 했을 때 긴장을 했었음에 틀림없었으나 담배 얘기를 들었을 때 약간은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이먼은  받은 명함에 있는 회사이름과 주소등을 이미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아서 그들의 실체가 심히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들의 행동거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참이다.

회사이름은 검색에 나와 있지만 주소와  업종이 달랐다. 만약 이들이 사기꾼 집단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손해를 끼칠까에 대하여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도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신체적으로 위험에 빠질 염려가 없다고 어찌 보장하는가? 

여태껏 그들이 쓴 돈이  꽤 많아 보이는 것도 부담이다.

  고급 식당에서 엄청 먹어치운 식사비, 우리에게 내어준 BMW 차량, 통역 아가씨가 한편이 아니고 그녀 말대로  아르바이트로 임시  고용 되었다면 그녀의 일당등이 그들이 지출한 그들의 비용이다. 나중에 우리를 위협하여 그들이 지출한 비용을 포함하여 막무가내 청구서를 들이밀 수도 있다. 아니면 공포를 조성하여 돈을 갈취할 수도 있다. 하여튼 아직은 우리가 부담한 비용은 없다. 비행기표와 호텔비등의  출장비는 그들에게 귀속되는 지출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물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까짖(?)  담배 선물이란다. 담배 상점을 가기 전에 내가 내 노트북 컴퓨터에 꽂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스피커를 샀으면 좋겠다고 통역 아가씨에게 얘기를 했다. 무료한 호텔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음악 듣기가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는 스피커 음량이 너무 작아 답답했던 탓이었다. 그들 모두가 법석을  떨었다. 그 스피커를 사러 차 두대와 사람  7,8명이 모두 움직여 어디론가로 달려갔다.

  드디어 작은 스피커를 사고 담배가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상가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한층 인가를 걸어 내려가서 담배가게로 들어갔는데 이건 내가 생각한 가게가 아니었다. 상점이라고 표현하기도 적절치 않을 규모의 담배 백화점이다. 내 생전에  담배를 파는 상점이 이렇게 큰 곳은 처음 보았다. 백 평이나,  이백 평 보다도 큰 공간이 화려한 포장의 담배로 꽉 차  있다. 붉은색, 황금색의 담배 케이스는 화려한 조명등 아래에서 번쩍거린다. 가격을 보니 입이 딱 벌려진다. 순간 내가 중국의 담배에 대하여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싸더라라도  한두 보루야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체념하고 있는데  주가 다가와서, "몇 보루를  살까요?" 한다. 내가 사이먼을 보았다. 사이먼은 이제 사태를 확실히 깨닫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기에 걸렸구나' 내가  통역 아가씨에게  두 보루면 적당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통역이 주에게 내 의사를 전하자 주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노골적인  표정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네요. 사업을  같이 하자는 사람들이 그렇게 예의를 모르면 어떻게 같이 사업을 합니까?" "그러면 주 선생께서는 몇 보루가 적당 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보루는 되어야 할 겁니다."

이제는 나도 사이먼도 사업은 접었다. 100%  사기가 틀림없다. 한 보루 값을 평균 15만 원으로 보면,  45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어떻게 하면 불상사 없이 이 난관을 극복하는 가가  관건이 되었다. 당장 이 낯선 곳에서 경찰에 신고하여  법석을 떨면 그다음 변수는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른다. 적어도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는 틀리게 될지도 모른다.

사이먼이 나섰다. 사이먼은 유창한 베이징어로 '우리는 선물을 그렇게 과도하게 하는  사업에 대하여는 모른다. 그것은 우리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선물로 인하여 사업자체가 되고 안 되는 그런 불쾌한 사업에는 우리도 관심 없다.' 하고 조리 있게 설파한다.

  헤이룽장의 보통화는 베이징 사람들도 인정하는 중국의 표준이 될 정도로 격이 높은 언어라고 나도 일찍이 들은 바 있었지만 사이먼이 유창한 중국어로 단호한 태도로 대꾸를 하니 주의 기세가 금세 누구러졌다. 사이먼이 값이  중간 정도되는  담배 다섯 보루를  골라 포장을 시키고 주한테 넘겨주었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입니다.  그들한테 잘 얘기하십시오. 실제로 신용장이 열리고 거래가 완료되면  우리는 주 선생에게 특별히 보답할 것이요."

주는 한 마디 못하고 물러났다. 아마도 그는 사이먼이 태국 화인이 아니고 중국인이란 것을  이제야 눈치챈 것 같았다. 그들 모두는  속수무책으로  상점을 나왔고 주와, 통역아가씨만 빼놓고 우리와 악수를 하고 떠나갔다.

주와 통역 아가씨는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어야 했다. 내가 아가씨에게 물어보았다.

"아가씨는  저 사람들 하고 같은 회사에 다녀요?'' "아니에요.  나는 저 사람들 잘 몰라요.

저는 대학교  영문과 학생이에요. 저 사람들이 저를 파트타임으로  고용해서 통역 일을 해주고 있는 거예요.''

글쎄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이는 대학생으로 보인다.

호텔로 돌아와서 주와 통역 아가씨와  작별 인사를 했다. 서로  시침을 뚝 떼고  살뜰하게 악수를 나누고 덕담을 하면서 헤어졌다. 이제는 사이먼이나 나나,  우리 회사의 이 이사나 모두가  사기에 당한 것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가 그들에게  사기당한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담배  다섯 보루가 그들의 사기 노력의 대가다. 그것을 얻기 위해  그들도  돈을 꽤 썼다.

음식값, 자동차 임차값,  모르긴 해도 회의실 임차값, 그리고  동원된  인원이 몇 명인가?

자동차 운전수는 차량 임차에 포함된 금액일까? 그러나 내가 쓴 비용은 그들에게 귀속되지는  않았지만  꽤 된다. 그러나 이게 뭔가? 중국의 윈난(雲南)은  상상 속에서 유토피아(Utopia)의 세상인 상그릴라(Shangri-La,  香格里拉)가 있는 곳이고, 그곳은 도연명(陶淵明)이 말하는 무릉도원(武陵桃源)  같은 곳이 아니던가? 그 유명한 차, 보이차(푸얼차)의 고향이며  숭고한 도가(道家)의 아미산(峨眉山)이 버티고 있는 그 윈난의 주도 쿤밍에서, 더욱이 얼마 전 우리 가족이 와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던 정겨운 곳에서 담배 다섯 보루를 사기당하는 바보가 되었으니, 사정이 딱하게도 되어 버렸다. 솔직히  이 턱도 없는 이야기를 내 가족에게는 얘기하지 않았다. 사실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조차 또한 얘기 안 한 것 같다.

뭘,  자랑이라고  떠 벌리겠나?

담배! 누구라도 담배가 사기의 매체가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중국의  담배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중국담배에  대한 공부를 해 보니 중국의 담배는 현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종류 또한  많고 뭐니 뭐니 해도 값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싼 것들이 있는 것에 놀랐다. 내가 조사한 담배에 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황허로우(黃鶴樓), 훙허다오(紅河道), 리췬(利群), 진롱(眞龍), 바이샤(白沙和天下),  난징(南京),

동충하초(冬蟲夏草) 등 수많은 브랜드는 한 보루당 우리 돈으로 34만 원을  넘는다.

유영(遊泳)이라는 특별한 브랜드는 3백만 원을 호가하고  황허로우의 대금 전(大金塼)도 2백만 원에서 3백만 원  정도이고 허티옌샤(和天下),  꾸이엔(貴煙)등도 2백만 원 이 넘는다고 한다. 

윈난성(雲南省)하면 대번 생각나는 산업이 차(茶)인 줄은 누구나 알고 있고 근래에 들어와 커피  수요가 커지면서 차밭이 커피 밭으로 바뀌어 중국 커피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 두 개의 산업뿐만 아니라 담배생산도 그에 못지않게 주요 산업인 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그들과 함께 들렸던 엄청난 크기의 담배 상점이 바로 윈난의 담배 산업을  상징하고 있던 것임을 알겠다. 자료를 찾아보니 윈난에 소재하고 있는 대기업의 제1,2,3위 기업이 모두 담배회사이다. 중국 연초총공사 윈난 성공사가 제1위의 기업이고,  홍타연초집단(紅塔煙草集團)이 제2위, 홍운홍하연초(紅雲紅河煙草)가  3위 기업이다.

그러니 담배로 사기를 치겠다는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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