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로부터였다. 수채화풍의 표지와 어우러진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렸다. 그 책을 읽을 때가 2019년정도로 추정되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헬조선’이라는 시대의 분위기가 묘하게 대한민국을 감싸던 때였다. 나는 일명 ‘국뽕'으로 치닫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대해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더랬다. 그래서 청년들의 그런 감정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여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끌렸다. 24살 겨울에 호주에서 40일간의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그때 처음으로 ‘워킹 홀리데이’라는 제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느낀 충격은 참으로 신선한 것이었다. 교육대학교 특성상 유학을 가거나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하는 경우는 전무했다. 해외에서 인턴과정을 밟는 일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커리큘럼을 충실히 따르는 모범생 스타일이었고, 교대는 그런 학생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어쨌든 장강명이란 작가의 담백한 문체와 필력에 매료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회부 기자를 10년 넘게 하며 닦여진 그의 문장은 보통으로 복잡 다단한 묘사로 나를 지치게 하는 글들과 달랐다. 나는 지극한 현실주의자라 본론을 간결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자 출신인 그의 글은 참 간결했다.
근래에 에세이 추천 목록 중에서 꽤 자주 ‘5년 만에 신혼여행’이라는 제목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 중 무려 2명의 작가가 이 책을 언급한 것이었다. 제목이 끌리기도 했지만 장강명식 에세이는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한국이 싫어서>에서 ‘계나’라는 여자 주인공으로 분한 사람이 사실은 그의 아내인 ‘HJ' 였기 때문에(그의 작품에서 그의 아내는 이니셜만으로 이렇게 통칭된다.) 그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장강명이 사랑하는 그 특별한 여성을 ’날 것으로‘ 읽을 수 있다니.
이 작품은 장강명 부부가 말 그대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3박 5일 동안 있었던,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3박 5일의 전후로 몇일을 덧붙여 그동안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엮은 책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과 3박 5일동안 떠난 보라카이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여행 후의 후일담을 조금 보태 완성한 책이다. ‘작가는 고작 3박 5일간의 일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쓸 만큼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 줄 알아야 작가로구나.’ 싶은 책이었다. 너도 갔고, 나도 갔지 않은가. 그 신혼여행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일생의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 글 한편으로도 남기지 않았았다. 하지만 전업 작가인 그는 고작 길어야 일주일이 될까 말까한 기간에 일어난 일과 단상들을 모아 이렇게 책으로 엮어 내다니. 그의 필력과 집중력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해변의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해가 지는 걸 봤다. 그곳이 ‘적당한 장소’였던 이유는 어느 필리핀 소년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진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스마트폰에 외장 스피커를 연결해서 바닷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음악이 딱 그 노래에 어울렸다. 소년은 긴바지를 입고 상의는 벗은 채였다. 모래로 베개를 만들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쿨한 소년이 실제 세계로 나온다면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매일 보는 풍경이 지루하지도 않을까.
우리는 소년의 음악을 훔쳐 들으며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보라카이의 노을은 서울의 노을과 달랐다. 태양 주변 하늘이 붉게 물들었지만, 그 붉은 기운이 하늘 전체를 채우지는 못했다. 바다 위라서 그런가. 하늘 자체가 도시의 하늘보다 훨씬 더 큰 느낌이었다. 어쩌면 서울은 매연 탓에 빛이 더 산란하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나와 HJ는 껴안고 석양을 보았다.
“이제 나 좋아?”
내가 물었다.
“나한테 복수할 거야?”
HJ가 되물었다.
“안할게.”
“그럼 많이 좋아.”
(중략)
내가 여기 소녀였다면 저 소년과 사랑에 빠졌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소년도 우리도 바다만 바라보았다. 세계 최고의 우울한 석양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곳에 뭐가 낯선 게 있을까. 왜 도시에서는 이렇게 감동을 하지 못했을까.
‘도시에서는 이렇게 석양을 기다려서 천천히 본 적이 없었으니까. 저녁 무렵에는 늘 할 일이 있었으니까. 해는 매일 지는 거라고, 구태여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석양 따위는 한가할 때 보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나는 생각했다. '
장강명의 에세이는 나에게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 달콤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