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학습자의 고백

리코더의 반란

by 소소러브

뭔가를 새로이 배우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장소나, 모험은 두려워하는데 새롭게 배우는데는 별로 겁이 없는 편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몸으로 하는 건 완전 잼병이다.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필연적으로 손을 빠르게 움직여야만 하는 악기 배우기도 더딘 편이다. 느린 학습자를 판별하는 진단 도구가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 스스로를 생각할 때 나는 꽤 ‘느린 학습자’이다.

가령 리코더를 배운다 치자. 손가락이 리코더 위에서 이리저리 갈 길을 잃고 막 헤맨다. 실제로 교사가 되고 나서 삼 년 째 해던가. 일주일 내내 하루에 8시간씩 리코더를 배우는 연수를 받았더랬다. 리코더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리코더가 있으며, 우리가 주로 쓰는 리코더는 알고보니 메조소프라노 리코더였다. 하루에 2-3시간 정도씩 각각의 리코더를 종류대로 번갈아가며 연주했다. 리코더의 종류별로 운지법이 달라서 머리가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게다가 나중에는 부는 게 힘들어서 호흡곤란(?)이 올 지경이었다. 부는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체력이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제대로 알았다.


연수원은 내가 살던 곳에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다행히 연수원에서 만난 한선생님께서 일주일간 나를 라이딩을 해주셨다. 처음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던 날 차 안에서 고상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선생님, 이거 무슨 악기로 연주하는 거에요?”

아마 플롯이겠거니 예상하고 여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이거 리코더야~”


그때 머리를 띵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리코더로 말하자면 그저 초등학생들이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하고 불어 제끼는 시시한 악기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내 머릿속에는 그렇게 리코더가 각인되어 있었다. ‘학교종’이나 불고, ‘나비야’나 불다가 끝나는 악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리코더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된 줄도 처음 알았다. 리코더는 그 기원이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악기란다. 다양한 시대를 지나오면서 성행과 쇠퇴를 겪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존재하는 대단한 악기란 말씀이다. 리코더는 무려 바로크시대를 주름잡던 악기였다.

리코더 연주 실황을 담은 씨디를 연수원을 오가며 들으며, 리코더가 그렇게 고상하고 풍부한 음색을 내는 줄 처음 알았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리코더를 전공했고, 보수교육을 일정기간 받은 다음 초등교사가 된 케이스라고 하셨다. (리코더가 전공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당시에 한시적으로 교사가 부족해 교대에 편입생을 200-300명씩 받기도 했고, 보수교육으로 초등 교사를 전환하던 시기였더랬다. 선생님은 그 시기에 초등교사가 된 것이다. 선생님같이 한 악기를 깊이 있게 배우고 조예가 있으신 분이라면 어느 학년의 음악교과를 가르쳐도 능수능란하게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연수를 받은 지도 벌써 15년이 되었다. 다행이도 몸이란 건 참으로 신기해서 자전거를 배우면 나도 모르게 몸에 익어, 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듯이 리코더의 기본적인 운지법과 텅잉법 등은 여전히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일주일간 말 그대로 빡세게 배운 리코더 연주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많이도 우려(?)먹었다. 좀 산만하거나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을 잠재울 때 리코더 연주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반 분위기가 헤이해지고 공부에 집중이 영 안 되는 날은 리코더를 꺼내 같이 불었다.

오른손은 낮은 음을 연주하기 때문에 학기초에는 오른손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는 ‘나비야’ 같은 간단한 곡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할아버지의 시계’라던지 간단한 영화 OST, 심플한 스타일의 가요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서른 명의 반 아이들이 한 마음으로 한 악곡을 끝까지 연주해 내는 걸 함께 겪으면, 우리가 남이 아니라 하나라는 묘한 느낌과 위안을 받곤 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그 시간만큼은 모든 걱정 근심을 내려놓고 하나의 어우러짐을 만끽했던 것 같다.

리코더를 가르칠 땐 처음에 리코더의 유구한 역사부터 살짝 언급한다.

“얘들아, 리코더는 말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시한 악기가 아니야. 무려 바로크 시대를 휘어잡던 대단한 악기란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 반짝하는 순간 텅잉 하는 방법과 운지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가 슬슬, 야금야금 진도를 뺀다. 처음에는 악기 연주 배우기를 힘들어 하던 아이들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곡을 소리로 만들어 내는 기쁨을 한번 맛보자 리코더 연주에 제법 애정을 가졌다.

그때 아이들과 함께 연주했던 곡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사랑을 했다~우리가 만나~”


“미레도 미솔~미레도 미레~”


내 머릿속은 이렇게 기억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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