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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너머 Sep 07. 2023

취향 모음집 2.

내가 좋아하는 것들. 

6. 좋은 음악과 함께 책을 읽는 것.

: 누군가는 오글거린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게 내 낭만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뭔가 좋은 음악과 함께

좋은 글을 읽는 건 나만의 시간을 제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만 같다. 그 옆에 술도 같이 있으면 좋고. 

너무 술, 술 거려서 술에 미친 사람 같을 수도 있지만 주량이 세진 않다. 그래도 적당한 술은 나조차도

나에게 숨기는 자아같은게 나와서 그때의 그 순간을 좀 더 자유롭게 즐기게 해주는 것 같아 좋아한다. 

황홀한 선율과 함께 어여쁜 단어들로 구성된 글. 그게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 무엇도 좋다. 충분히 여운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라면 어떤 것도 상관 없음. 나에겐 이런것도 낭만이다. 보고 읽고 들은 것들을 내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 시키며 기뻐하는 것. 그리고 다시 한번 책, 영화, 음악이 내 삶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영역이어서 다행인지 기뻐할 수 있는 것. 


7. 늦은 밤, 훌륭한 영화를 보고 찾아오는 여운에 잠시 젖어 있는 것. 

: 영화를 한번 보려면 나에겐 준비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씩 영화를 보지는 못하는게

영화에 있어서만은 그 어떤것보다 철저한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한번도 pause 버튼을 누르지 않기 위한

기본 주변 세팅이 완벽해야 한다. 핸드폰이 울리지 않아야 하고, 영화와 함께 곁들일 적당한 술도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조용해야 하고. 또 영화를 한 편 보는건 특히 무거운 주제일 때 더 심한데 아무래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다 보니 마음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는 만큼 자주 보게 되진 않지만 또 한번

보면 몇 분 지나서 '아 나 이래서 영화 좋아하지' 싶다. 영화엔 그런 마력이 항상 있다. 그래서 내일 또 무조건

저녁에 한편 더 본다 해놓고서 다시 시간을 가지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마음의 단단한 준비가 필요한 만큼 난 영화 한편을 봐도 여운이 길게 남는 편이다. 근데 또 그런 

여운에 고통(?)스러워하는 걸 좋아한다. 어쩔 땐 너무 훌륭해서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의 갈증은 어마어마하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난 사랑한다. 나 변탠가..?


8.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것.

: 이건 너무나 흔한 취향이기에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련다. 흔하다는 건 그만큼 확실히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

아득히 보이는 찬란한 야경을 배경으로 볼에 삭 삭- 하고 스치는 바람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건 행복. 

아-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이 그립다. 


9. 엄마 옆에 누워 시덥잖은 얘기를 하는 것. 

: 내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뭔가 루틴(?) 비슷한 게 있었는데, 

일단 내가 우리 가을이(반려견)를 산책 시키고 그 다음 깔끔하게 목욕까지 한 후 자기 전 그 한 두시간 정도. 

그때 엄마 옆에 꼼지락 꼼지락 기어 들어가서 핸드폰으로 맞고를 치고 있는 우리 엄마 옆에서 엄마의 맞고를

관망하는 것. 훈수도 놓으면서, 물론 엄마는 내 훈수를 들은 체도 안하시지만. 그러다 꿈벅꿈벅 졸고 있는

엄마의 폰을 뺏어 엄마 맞고를 내가 대신 하는 것. 그런 흐름이 항상 존재했다. 

그리고 난 그 날들이 아직까지도 제일 평화로운 나날들로 기억된다. 지금도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것. 

정말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냥 자기 전에 누워서 미주알 고주알 엄마랑 얘기하는게, 그게 

그렇게 그립다. 그러다 가끔씩 가을이가 재롱 부리면 같이 웃고. 

아우- 엄마 보고 싶어. 


10. 누군가의 진심을 보는 것. 

: 진심이라는 말은 심심치 않게 쓰이는 단어이긴 하지만 진심이라는 단어에서도 외치고 있듯,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이 그리 쉬운게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마 이 이유 때문이리라.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조금은 덜 모든 것을 겪어 본 아이들이 좀 더 거짓 없이 

진심을 가지고 담고 전하기에.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고 의지가 충만한 아이들을 꺾고 싶지 않기에 

우린 그들의 동심을 최대한 지키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니. 그만큼 진심은 점점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가끔씩 마주치게 될 때 흐뭇해지는 마음과 별개로 눈물까지 나려고 하면

내가 오버하는 걸까? 

내가 오래 산것도 아니고 이런 말 하기 참 부끄럽고 웃기단 것도 알지만 그래도 푸릇푸릇하게 세상에 막 나온

애가 아닌 걸 감안해주고 본다면 나도 내가 살아오면서 마주해야 했던 크고 작은 일들로 많은 것에 

회의적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래서 우연치 않게 그런 진심을 마주 했을 때, 혹은 목격했을 때

울컥해버린다. 다른 의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진심을 전달하고 전달되는 과정을 보는것도 

어찌보면 참 행운 인 것 아닐까. 

난 감동도 참 쉽게 받는 애라 그 범위가 굉장히 넓다. 사소한 것 부터 큰 제스처의 진심까지. 

이래서 아마 난 강아지를 사랑하나보다. 한 톨의 의도도 없이 순수히 인간을 사랑해주니까. 


오늘도 여기까지. 

이런거 보면 난 참 행복한 사람. 이렇게 날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10가지나 되니까.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내 취향을 다시 되짚어 보는 과정도 꽤나 좋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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