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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너머 Feb 03. 2024

애정결핍(1)

인정욕구.

나 아마 굉장히 애정결핍 상태인가 보다. 

왠 글 첫머리부터 뭉툭한 투덜거림이냐 싶겠지만은 이렇게라도 선언하지 않으면 지금의 내 마음상태 조차도

내가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것 만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저 첫 문장의 '아마' 에 애정결핍임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 조금, 그리고 누군가 아니라고 

잡아떼줬으면 좋겠는 마음도 조금 섞여서 '아마' 라는 부사를 선언의 속성과는 맞지 않음을 인지 하고 

있음에도 제 멋대로 붙여버렸다.


런던에서 처음 살기 시작했던 2017년부터 난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친구가 곧 바로 생겨버렸고

오롯이 '혼자'임을 경험해 볼 기회를 자체적으로 박탈해버렸다. 

난 그때까지도 내가 꽤나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 밖에 없었던게 한국에선 혼자 영화 보는것, 

혼자 쇼핑 가는 것, 혼자 서점 가는 걸 꽤나 즐겼다. 그래서 유럽여행도 대담하게 혼자 갔던거고. 

패기로 한달 간 유럽을 여행했던 건 큰 모험이었고 소중한 경험이지만 사실 안 외로웠다고 하면 거짓말인게 

혼자 뭘 하지를 못했다. 결국엔 맨날 동행을 찾아 다녔고,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녀야 하는 날이라도 되면 

짐짓 태연한 척 했지만 사실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홀로 있을 때 난 내가 사색도 할 줄 알고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개뿔. 

그래도 절대 심심한 티를 낼 수 없었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했고 그래야 했으니까. 

심지어 나 혼자 있을 때도 난 나를 가스라이팅 했더랬다. 이건 무료하고 지루한게 아니다, 난 혼자 있어서

느낄 수 있는 이 기분을 좋아한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도 그럴것이, 나 혼자 있을 때 조차 내 마음을

속여야 결국엔 궁극적으로는 진짜 내가 혼자임을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미련하게도

나 자신 또한 속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함께 여행'을 즐겨보니 난 혼자는 싫었다. 적어도 감각을 온전히 동원해야 하는 여행에는

내 느낌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는게 좋았고 즐거웠다. 

난 아마 처음부터 애정을 갈구하는 유약한 애였지 싶은게

전 남자친구랑 첫 여행을 갔다오고 나서는 어디든 그와 붙어다니고 싶었고 그래서 워킹홀리데이 2년 내내

떨어진 적이 거의 없다. 관계가 1년 정도 됐을 때는 잠시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오스트리아를 혼자 갔다왔지만 그 또한 오만한 간과였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숙소에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로 얼른 영국을 돌아가고 싶다면서 찡찡댔으니까. 


과연 내가 한국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비독립적이었을까 싶지만 '나의 누군가들' 이 없는 타지에서 사는 건

상상 이상으로 고독한 일이었다. 

그래서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꽤나 혹독한 마음의 겨울을 겪었고, 난 그 속에서 감히 조금은

성장하고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있고. 

하지만 성장과 성숙이란 것엔 완성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 않는 만큼 그때의 성숙은 '발생'이었지, 

'완결'이 아니었고 난 요즈음 다시 한번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내가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오롯이 혼자 영국에서의 삶을 꾸려가는 그 과정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면역이 됐다고 생각했다. 특히 완전히 혼자 살게 되면서 나름 루틴화 된 내 하루에

만족하고 살았다. 굳이 만날 사람이 없어도 난 이 나름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일어나서 빈둥빈둥 대다가 운동 가고 장을 본 후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꼭꼭 씹어 먹고 하루 끝에 샤워로

청결한 마무리. 자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놓고 맥주 한 잔 하는 것에서 오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딱 1인분의 행복으로,

난 애써 타인의 존재의 필요성을 무시해오고 있었다. 

웃긴 건 그렇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서도 속이 허했다. 고로, 난 외로웠다. 안 외로운 척 하면서. 


취준생 신분이라 그런가 더 힘들었다. 소속감이 없는 하루하루, 나의 기분을 상승시켜줄 수 있는 촉매제에

사회적 만남의 부재는 내 기분을 더 공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그래도 영국에서 이렇게 살 수 있는게 

어디냐며, 나 아마 이제는 확실히 혼자인 것에 익숙해졌다고 자위하며 그렇게 모른 척 해왔고

위선적인 모른 척에 익숙해져가고 있을 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영국에서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또한 한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와버렸다. 

그녀와 노는 게 가장 즐거운 시간들 중에 하나였는데 그녀까지 떠난다니,.. 

그래도 친구가 아예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난 오랜만에 잊을 수 없는, 즐거운 기억으로 충만한 holiday를

같이 보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잘 놀고 돌아와보니 그제서야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이젠 진짜 나 혼자고 더더욱 내 외로움의 파이의 크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갈 거란 걸. 


그래서 처음엔 더 취준에 매달렸다. 취준생은 이렇게 고통스러워야해, 하는 일이 없으니까 마음의 고통은

항상 달고 살아가는 거야 라며 괴로운 자기합리화를 내 어깨에 계속 얹어댔지만 그것도 한계였다.

런던의 날씨가 좋으면 당장이라도 집을 박차고 나가서 공원에 누워 마음껏 햇빛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도 왠지 혼자서 그럴 마음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난, 같이 이 날씨를 즐길만한 누군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 누군가는 여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밖에서 만난다는 것이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후로는 너무 낮선 개념이어서 굳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더러

외로움을 달래려고 남자를 만난다는 생각 자체가 나에겐 불순해보였다. 

게다가 영국에서는 어플을 통한 만남이 너무 common한 거여서 그렇게 줄곧 지인들에게 시도해보라고

조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어플엔 마음조차 두지 않았지만,

작년 9월 초 쯤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이 결국엔 내 고집을 꺾어버렸다. 


그래 한번 재미로 만나보자- 하고 어플을 깔아버렸고, 두번째 성장통이 시작됐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지금도 ing인건 안 비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국 비자 만료 약 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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