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을 잃은 비둘기

by 미쉘 송

서울 나들이를 끝내고 마산으로 돌아오기 위해 광명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역사에 놓인 벤치에 잠시 앉았다.

바쁘게 다닐 때는 그곳에 예식장이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쫓다 보니

예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식이 시작하기 전인지 많은 사람들이 좁은 복도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적당히 오가는 사람들과 예식장을 찾은 축하객들로 역사 안은 제법 붐볐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남편 쪽을 바라보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비둘기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엔 비둘기가 건물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무척 신기했다.

그러다 가까이 다가온 비둘기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비둘기의 다리가 유난히 짧았고 뭉툭했다.

보통의 조류들이 가진 발이 아니었다. 발가락이 없다고 표현해야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실로 충격이었다.

발이 없는 비둘기를 본 것도 난생처음이었고, 발도 발가락도 없는 뭉툭한 다리로 걸어 다닌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자리 잡고 앉은 비둘기를 한참 바라봤다.

놀란 가슴 이면엔 안타깝고 애처로운 동정심이 일었다.

저런 다리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을지 비둘기의 고단했을 삶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다 '데리고 가서 키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어쩜 누군가 애완용으로 키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찾았지만 비둘기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바닥에 동그랗게 앉아 제 털을 다듬고 있는 비둘기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지하철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요란한 소리에.

비둘기는 날개를 펼쳐 낮게 날아 사람들이 거의 없는 복도 끝으로 가버렸다.

나는 동정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 채 비둘기를 쫓다가, 또 다른 걱정에 다다랐다.

'건물 밖으로 어떻게 나갈까?' 하는.

고개를 들어 넓은 역사의 천장을 바라봐도 어디에도 뚫린 곳은 없었다.

걱정은 쌓여 가는데 기차 출발시간이 되어 플랫폼으로 가야만 했다.

눈은 복도 끝에 점으로 보이는 비둘기에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비둘기가 제 명을 다하여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기며 작별을 했다.


발가락 잃은 비둘기를 본 후 충격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자료들을 찾아보니 예상과는 달리 도심의 비둘기들이 발가락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18년 프랑스 연구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가는 끈으로 인해 발가락 절단이 이루어진단다. 미용실 밀도가 높을수록 발가락이 잘리는 비율이 높다는 것과 노천 장터의 음식점이 많은 곳의 비둘기들이 발가락 절단이 많았다고도 한다.

청소 과정에서 도로로 버려지는 머리카락과 가는 끈이 원인일 수 있다는 보고다.

결국 도시의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비둘기는 피해를 입는 것이다.

비둘기는 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우리와 가까이 살고 있다.

비둘기의 깃털이 중금속에 오염된 정도나 발가락 절단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도시의 오염 측도를 나타내는 새로운 지표가 되고 있다 하니 통탄스럽다.

비둘기의 다리가 성치 않다면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성치 않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환경이 훼손되어 동식물이 살아갈 수 없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발가락을 잃은 비둘기를 나는 그저 다쳤다고만 생각했었다.

인간들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환경 파괴의 결과라는 걸 알고 나니 비둘기에게 미안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지구는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님을 인정하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를 배려하고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을 지키고 살리는 작은 일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큰 희망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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