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마당에 그린 꽃과 나비로 시작된 화가의 꿈

by 미쉘 송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어른들은 모두 들로 바다로 나가고, 언니, 오빠들은 학교에 가고,

키우던 똥강아지도 마실을 나가 텅 빈집에 홀로 남겨질 때가 더러 있었다.

이 방 저 방, 위채, 아래채를 하릴없이 뱅글뱅글 돌아다녀도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뒤 안 대나무숲의 댓잎들이 바람에 떠는소리가 아버지가 솔가지를 끌고 오는 소리 같아 눈은 자꾸만 대문을 향했다.

대문 밖을 나서 눈앞에서 넘실거리는 바다를 한 번 보고, 길 끝에 엄마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나 하고

고개를 길게 빼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텅 빈 길에 고개를 떨구기를 몇 차례,

기다림에 지치면 발끝으로 자갈돌을 굴리며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처마가 만든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개미에 심통을 부려 손가락으로 뒤를 쫓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흙마당의 흙을 파기도 했다.

그러다 나뭇가지로 꽃도 그리고 나비도 그리고 나무도 그리며 흙마당을 가득 채웠다.

내가 생각한 모양들이 마당 위에 그려지는 게 마냥 신기했다.

내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으면 흙으로 덮어 지우고 다시 그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흙이 있는 곳은 모두 도화지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미술시간에 반 친구 한 명이 모델을 하고 그 친구를 소묘로 그리는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갈 즈음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미술 선생님께서 "미경인 미대를 가야겠다" 하시며 지나가셨다.

그 말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내 안의 열망을 끄집어내어 그걸 꿈으로 확장시켜 줬다.

그렇게 미대를 꿈꾸고 미술사학에 관심을 가지며 살았다.

하지만 현실은 꿈과는 다른 길을 살게 했으니, 미대생은 묻어둔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2015년 늦봄과 초여름 그 언저리의 어느 날.

마흔 중반을 넘긴 나이였지만, 마치 중학생 그 시절 소녀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화실을 찾았다.

그 발걸음이 가슴에 남아 멍울이 되어가던 꿈을 끄집어내는 용기였다.

화실에 은은히 퍼져 있던 유화물감의 오일 냄새가 폐부를 스칠 때,

오래도록 찾지 못한 고향의 안식처 같은 그리움이 확 퍼졌다.

기초 소묘를 시작했는데 연필이 한 번 두 번 지나면서 드러나는 형체를 바라보며,

잊고 살았던 시간들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꿈같은 화실에서의 시간을 몇 달 보내다 여의치 않은 사정들로 더 이상 화실을 나가질 못했다.

그러나 이젤과 캔버스, 물감, 팔레트 등을 집으로 옮겨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틈틈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동안 현실을 살아내느라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나의 일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붓을 들고 색을 칠하며 캔버스가 채워지듯 내 마음속 하얀 도화지 위에도 이쁘고 환한 색으로 채색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어릴 적 흙마당에 수없이 그렸던 꽃과 나비, 새, 무수한 얼굴들로 시작된, 화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나의 꿈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20대, 30대를 다 지나고 말았다.

그러나 마음으로 끈을 놓지 않고 있어서인지 우연한 기회에 활동하는 작가를 만나 그분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도움들이 있어 묻어 두었던 꿈을 끄집어 내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도 감사한 인생이다.

즐기는 자의 특권인 여유가 있어 조급하지도 않고, 아직 화가를 꿈꾸며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사람이라 행복하다. 퇴직 후 적극적으로 그림을 그리다 일흔 쯤에 전시회를 할 계획이다.

오늘 90살에 전시회를 하신 할머니를 봤다. 그분의 기사를 읽으며 나는 결코 늦지 않음을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사라지는 꿈은 없는 것이다.


꿈꾸고 도전하는 자. 그대는 영원히 젊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