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은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임용고시 합격까지 6년이 걸렸다.
6년.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졸업을 하고, 석사 학위까지 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어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졸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다. 군대를 다녀오더라도 몇 번은 다녀올 수 있을 시간이고, 하물며 밥으로만 치면 몇 끼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인지 셈하기도 어렵다. 무튼, 한 사람이 나고 자라 성장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인 그, 6년 동안 나는 하나의 시험에 도전했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임용고시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친구들은 나보다 더 감격해하면서 나를 대신하여 눈물까지 흘려주려고 했었다. '인간 승리', 뭐 그런 말을 들은 것도 같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부했냐고, 포기하지 않은 마음이 존경스럽다고, 감동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구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목표한 것을 이뤄낸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내 어깨를 도닥거릴 만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좋은 일에 마음껏 기뻐하고 재밌는 일에 배를 두드리며 웃는 법을 서서히 잊어버린 것이다. 철저히 욕망과 감정을 거세한 채 살았던 6년 동안, 나는 아무런 색깔을 지니지 않은 회색의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지 많이 상상했던 장면이 있다. 바로 최종 합격자 창을 확인하는 일이다.
가장 먼저 떨리는 손으로 교육청에 뜬 합격자 공지를 봐야지. 합격자 공지를 보고 커트라인을 먼저 확인하는 거야. 대충 1차 점수를 빼면 2차 점수가 보일 테니, 조금 덜 떨리지 않을까? 커트라인을 확인하면 어느 정도 각이 나올지도 모르겠어.
그 후에 합격자 조회 페이지를 눌러 보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확인 버튼.
나는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직접 확인하면 소리를 지르게 될까? 아마도 문 밖에 있을 엄마에게 달려갈지도 몰라. 아니면 전화를 걸어야 할까? 전화를 걸면 누구에게 먼저 전화를 해야할까? 아빠한테 먼저 전화하고 그 다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자.
떨릴 거야. 좋을 거고, 행복할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이 페이지를 확인한 뒤 했던 행동은 예상 밖이었다.
그저, '아, 됐다.'는 생각뿐이었다.
생각보다 그 환희와 즐거움의 시간은 무지 싱거웠다.
정말 이상했다. 그동안 그렇게도 바라왔던 순간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멍했다. 그냥, '아, 다행이다.' 정도의 느낌.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버린 것 같다. 나는 아무 색이 없다. 오색찬란하게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 합격의 순간은 여러 고통과 슬픔의 순간에 버무러져 안도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공부 시간을 확보한다고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아마도 포기하는 것이 익숙해져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의 나를 다시 찾고 싶다.
대학에 입학해서 반짝반짝거렸던 나를. 그 어떤 슬픔과 고난도 겪지 않았던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슬픔과 고난의 시기를 다 겪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용기내서 모든 것을 다 던져 뜨겁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이것은 반드시 지나갈 아픔임을 알고 세상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 세상은 나에게 좋은 것만 가져다준다고 진심을 다해 생각하며 삶을 즐거워 할 줄 아는 사람. 괴로움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삶의 서사 중 괴로움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기대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을 나를 만난 학생들에게 모두 알려줄 수 있는 선생님.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언니 같고,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 학생들에게 진심을 다해 공감하고 한 명 한 명을 살펴줄 수 있는 선생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경험을 주는 선생님.
'저도 됐으니, 여러분도 될 거예요.'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내 수험기간은 너무도 길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임용고시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이건 나중에 또 풀어봐야겠다.) 임용고시생으로 살면서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서 굳이 또 한 번 상기하며 풀어두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와 같은 지옥의 굴레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색깔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것. 세상을 마비시켜 버리면 안된다는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이제야 다시 찾게 된 나의 정상궤도를 마음껏 기뻐하면서, 나만이 가지고 있었던 그 '색깔'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여기에 기록하고자 한다. 그게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