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위큰 Jun 15. 2023

선생님도 시험이 무서워

시험 끝나고 나면 손이 줄줄 눈물이 달달

  바야흐로 시험 출제 기간이다. 정규 퇴근 시간인 5시가 되어도, 7시, 9시가 되어도 왠지 모르게 메신저에 빨간색의 'ON'이 여럿 활성화되어 있다. 각 학년별 야간자율학습 감독 담당 선생님들 제외하고서라도 평소보다 많은 빨간색 불들이 켜져 있어서, 왠지 나만 이 넓고 깊고, 어둡고 외로운 시험문제 출제 세상(?) 속에서 홀로 남은 게 아닌 것 같아서 위로마저 되는 기분이다. 


  학생이었을 때, 선생님들은 시험 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당신께서 낸 문제를 몇 백명이 되는 학생들이 푸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뿌듯한 감정이 들지 않을까, 뭔가 가르친 것에 대한 답장을 받는 느낌으로 즐겁지 않을까, 그렇게 짐작했다.


 그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이들의 성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어려운 부분을 꼬아서 내고, 보기 좋게 만든 함정에 학생들이 걸려들 때의 쾌감(?), 선생님이 노력한 게 보인다며 시험 문제의 질에 대해서 평가해 줄 때의 뿌듯함, 성적이 많이 올랐다며 시험지를 팔랑거리면서 달려오는 학생들의 표정. 

  그 무엇 하나 즐겁지 않은 게 없다.


  하지만, 시험 출제와 동시에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의 제기'이다.


  그니까, 그런 거지.

선생님, 이것도 답일 수 있지 않아요?




  

  문제에 대한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감사하다.

  하지만 학생들의 질문에 갑자기 머리 뒤편이 싸늘하게 식는 것이 느껴지면서, 등허리에 땀이 쭉 흐를 때가 있다. 분명히 검토하면서는 보이지 않던, 왠지 모르게 학생의 논리가 맞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때. 



  나 또한 1년차 때 이의제기 문항이 걸린 적이 있었다.

  <춘향전>에서 '이화춘풍(李花春風)'을 '이화춘풍(梨花春風)'으로 적었던 적이 있었다. 한자를 잘 알지 못하는(aka 한.알.못.)은 한글에서 자동변환을 해 주는 대로 바꾸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한 번 더 확인을 했어야 하는 것인데...!

  어찌됐든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였고, 해당 선지는 옳은 선지였지만, 한자 표기의 잘못으로 인해 옳지 않은 것이 되어 복수정답 처리가 되었다.


  이러한 경우다.






  시험 출제 기간인 요즘,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출제한 문제를 최대한 반복해서 보고 있다.

 

  국어 과목의 특성상, 아 다르고 어 다른 말이 아예 다른 의미가 되어 버리는 것들이 있거나, 혹은 수식 관계가 모호할 경우 무지 큰 오류사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해석의 범위를 열어두고 너른 마음으로 문제를 계속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검토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왜 꼭 하나씩 등장하는 것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4년차 직장인인 나는, 시험문제를 내면서 이걸 열심히 풀 학생들 생각에 기특함과 뿌듯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동시에 이걸로 인해 또 복잡한 과정들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인형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어떻게 해. 해야지.


  시험이 오류가 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어떤 문제가 학생들의 성취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는 고경력 교사가 얼른 되고 싶다. 다가오는 시험 날이, 학생 못지 않게 나 또한 너무 너무 두렵다.


작가의 이전글 영랑이 사랑한 오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