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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ggudari Mar 20. 2024

동정심, 너무나도 가벼운



※ 이 글의 사실 관계는 실제 인물을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되었습니다



 조정실에 들어온 원고는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는 조정관에게 자신이 얼마나 억울하고 슬픈지를 길게 이야기했다. 원고는 자신이 50년이 넘도록 죄 한번 짓지 않고 살아 왔으며 송사에 휘말린 현재 상황 자체가 너무도 두렵고 괴롭다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원고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나이 든 여성이었다. 어머니 또래였다. 흰머리가 듬성 듬성 나있었고, 얼굴에는 피로와 우울이 가득했다.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이 분명해 보였던 원고는 몸을 덜덜 떨면서 나에게 제발 합의해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원고를 동정했다. 내가 의뢰인에게 돈을 받고 맡은 역할과는 무관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원고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것이 내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다. 원고는 울면서 법원을 나갔다. 그날 나는 원고에 대한 동정심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후 원고가 준비 서면을 제출하면서 나를 힐난하는 문장을 썼다. 법적으로 의미가 있는 문장은 아니었다. 원고가 낸 서면은  혼자서 소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한 글이었고 나를 힐난하는 문장은 그 의미 없는 문장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화가 났다. '놀랍게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나는 내가 원고에게 화가 난 이유를 왠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분노의 기원은 '감히?' 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너를 동정했는데, 나는 너를 인간적으로 대해줬는데. 약자인 네가 감히 동정이라는 아량을 베푼 나를 힐난하는 글을 써? 따위의 감정. 


 그 감정은 오만이다. 나는 원고에게 아량을 베푼 적이 없다.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내가 느낄 인간적인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원고를 동정하는 마음을 가졌을 뿐이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버릴, 너무나도 가벼운 동정심. 그러니 나는 나를 힐난하는 아무 의미없는 문장에 화를 냈을 것이다. 이제 원고는 나를 힐난한 나쁜 사람이라서 내가 더이상 동정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얼마나 이기적이고, 또 계산적인 동정심인가? 내가 원고에게 가졌던 동정심의 무게는 그토록 가벼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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