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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ggudari Mar 21. 2024

이 감정 쓰레기통은 비쌉니다


※ 이 글의 사실 관계는 실제 인물을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되었습니다


 부재중 전화 17통. 점심 시간 1시간 사이에 사무실에 걸려온 전화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17통의 부재중 전화가 모두 한 명의 의뢰인으로부터 걸려왔다는 것이었고, 슬픈 사실은 그 의뢰인이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의뢰인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또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18번째 전화였다.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자 의뢰인은 내게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소송의 진행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딱히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그의 아우성을 들어주었다. 밉거나 화가나진 않았다. 의뢰인은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미치기 직전의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것이 조금 안쓰러웠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소리지를 사람이 없어서 변호사한테 전화한 느낌이었다. 나는 15분 동안 그의 아우성을 경청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송사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나는 송사를 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의뢰인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송사는 화가나고, 억울하고,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다. 어딘가에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행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일정 수준 이상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



 2시간 뒤, 다시 내게 전화를 건 의뢰인은 내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소리를 지를 때에도 의뢰인은 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어딘가에 분출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던 셈이다. 나는 이 의뢰인의 발버둥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의뢰인의 사과를 받을 자격이 있었고, 사과를 기꺼이 받아줄 수 있었다. 일정 선을 넘지 않는 발버둥은 들어주는 것.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역할 중 하나이다. 그래서 변호사를 한 풀이를 하는 직업이라고 하나보다. 나는 내가 꽤 비싼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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