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퇴근할 시간이다.
평소라면 5시 50분에 칼퇴해서 10분 동안 주차장까지 걸어간다. 그러니까 오후 6시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퇴근을 하기 위해 차에 타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편의점으로 가서 컵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하나를 사 먹었다. 오늘은 야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무실은 야근이 없다. 면접 때 대표님이 '어쏘 변호사분들은 칼퇴 하시고 주말에는 일 하지 마세요. 퇴근하고 일 하는 건 제가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이곳에서 일했던 지난 1년 동안 대표님은 본인께서 하신 언약을 지키셨다. 상담 시간이나 수사 시간이 길어지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나는 1년 동안 매일 캍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야근을 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자발적인 야근이다. 사무실에서 배당된 사건이라면 어떻게든 시간 내에 마무리하고 칼퇴해서 집에서 발 닦고 쉬려고 했을 텐데, 요즘은 내 사건이 많아지다 보니 그러기가 쉽지 않다. 내가 가지고 온 사건, 내 지인이 당사자인 사건, 내가 당사자인 사건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일이던 마찬가지겠지만 일의 완성도는 일을 한 사람이 가장 잘 안다. 똑같은 내용의 서면을 쓰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문장 하나, 표현 하나, 문단의 배치 하나 하나처럼 사소한 부분들이 달라진다. 그리고 사소한 부분들은 쌓여서 큰 변화가 된다. 80점을 넘으면 그럭저럭 법원에 제출할 수 있는 법률 서면이 되는 것이라면 내 사건은 90점, 100점짜리 서면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완벽하게 일을 하고 싶다보니 사소한 것들에도 신경을 쏟는다.
그러다 보니, 야근을 하게 된다. 평소에 칼퇴를 하다가 밤 늦게 귀가하는 날에는 피로감이 심각하다. 동호회 달리기도 못 하고, 블로그에 글 쓰기도 못하고, 친구들과 게임도 못하고 침대로 향하는 날에는 오늘 하루가 다소 허망하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매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저녁이 있는 삶이 참 중요한 것이구나를 매일 매일 깨닫고 있다. 돈을 더 주더라도 야근을 시키는 로펌은 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사실 그 로펌도 나 같은 사람은 안 좋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