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ggudari Jul 19. 2024

감정이입은 어디까지 해야할까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변호사는 사건에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변호사는 의뢰인과의 상담을 통해서 사건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당연히 상대방보다는 의뢰인의 입장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사람 심리라는게 내가 맡은 사건은 승소했으면 좋겠고, 내가 변호한 피고인은 무죄를 받았으면 하지 않겠습니까? 승리를 위해서 열심히 서면을 쓰다 보면 자연히 의뢰인에게 이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친 감정 이입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깊이 이입해버리면 3시간 이면 쓸 서면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경우가 생깁니다. 아 이 사람 진짜 억울한데... 아 이 사람 진짜 무죄인데... 이런 생각으로 서면을 쓰다보면 계속 수정하고 첨언하면서 서면을 작성하게 되는데, 이게 시간을 2-3배는 잡아먹기 때문에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어떤 서면에 너무 매몰되어 버리면 상대적으로 다른 서면을 쓸 시간은 부족해지고 이입이 잘 안 되는 시간에 쫓겨서 대충 작성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변호사가 감정 이입한 의뢰인은 완전 땡큐인데, 감정 이입 안 한 의뢰인은 억울하죠? 감정이입이 지나치면 이런 경우가 생깁니다.



 그리고 두번 째. 이게 중요한데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인다고 승소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사족이 많은 서면이 되거나 감정적인 서면이 되어버리면 패소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드라이하고 컴팩트하게 필요한 내용만 툭. 툭. 들어가 있는 서면이 법리적으로는 훨씬 낫습니다. 감정 빼고, 정말 정말 필수적인 내용만 쓰는 게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또 이게 진짜 드라이하게 서면을 써버리면 의뢰인한테 보여줬을 때 의뢰인이 응? 뭐야 왜이렇게 대충 썼어?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건 뭐 의뢰인 잘못은 아닙니다. 자기가 억울한 점, 화가 나는 점을 꾹꾹 눌러담은 25페이지 짜리 서면이랑 그런거 없이 법리적인 내용만 대충 나열되어 있는 것 같은 9페이지 짜리 서면을 받아봤을 때 의뢰인 입장에서는 25페이지 짜리 서면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변호사가 내 사건을 많이 신경쓰고 있구나, 내 억울한 점을 잘 알아주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겠죠. 게다가 (의뢰인이 봤을 때는) 대충 쓴 9페이지 짜리 서면으로 패소하면 변호사가 서면을 대충대충 써서 졌다!! 라고 하는 후폭풍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감정이입 하면 안 좋지만 또 아예 안 해버리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감정 이입을 지양하고 철저히 기능적으로 감정 이입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어느정도는 의뢰인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2. 어떤 포인트에서 딱 감정적으로 판사를 건드릴 필요가 있을 때.


3. 도저히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 변호사 셀프 동기부여 용도로. 


 이정도가 아닐까요.


 변호사는 정성을 담은 서면이 아니라 승리할 수 있는 서면을 작성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방향성은 승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맞습니다. 여기에 의뢰인 안심시켜주기 및 컴플레인 관리, 승리를 위한 판사 감정 건드리기, 직장인인 변호사 스스로에 대한 동기부여. 딱 이정도 감정이입이 첨가된 서면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모든 변호사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면서 글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다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송무가 좋다! (입사 1년차 소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