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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잉 Nov 19. 2024

인생 여행

누구와 가느냐

붉은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체코에서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학과에서 보내준 여행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유럽의 생경한 풍경이 그리 즐겁지 않았던 것은 함께 여행 간 학우들 중에 마음 맞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도 혼자여서 공허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길에서 내가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분은 하나님이다. 나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수시로 싸웠다. 집은 안식처가 아닌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피난처였다. 그분은 오랜 시간을 가슴에 담아둬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굳게 닫혀 있던 마음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찾아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남들보다 빨리 성공하고 싶었던 나는 기독교 동아리 같은 헛된 활동에는 발을 빼려 했지만, 정신 차려보니 그 누구보다도 열심당원이 되어 있었다. 돈 없이 사는 구질구질한 간사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평생 선교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선교단체 간사가 되었다. 그러다 직장생활을 하게 됐고 남편을 만나 목사의 아내가 됐다.


사명을 다해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 생각했다.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으로 그분과의 관계를 증명하려 했다. 사역자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지금, 이제야 비로소 내 존재가 하나님 앞에 선다.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내세울 게 없는 초라한 지금, 역할이 떠난 자리에서 내 실체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모든 것이 사라지니 관계 맺는 것에 서툰 내가 남았다. 하나님께 열심히 구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들은 하원하고 나를 만나면 항상 이렇게 묻는다. “엄마, 뭐 있어요?” 어린이집에서 방금 간식을 먹고 나왔음에도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다. 매번 간식을 챙겨가 주다 보니 이제는 당연히 엄마에게 먹을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기가 차서 “엄마한테 할 말이 이것밖에 없니?”라고 말한다. 하원하자마자 먹을 것부터 찾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아들이 나를 먹을 것을 주는 사람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나 또한 하나님께 똑같은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도 없는 채 달라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그저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닌지.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으로 살고 싶다. 역할이 아닌 존재로 서고 싶다. 모든 겉껍질이 다 사라지고 존재만 남은 자리에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하나님 한 분이길 바란다. 하나님이 나를 원하시는 것처럼 나도 그분을 원하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을 깊이 느끼고 해가 거듭할수록 그분과 깊어지는 것. 아무 근심 없이 평안한 날을 지날 때나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둠 속에 있을 때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것은 최고의 인생여행일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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