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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서퍼 Nov 04. 2023

영혼을 위한 아침밥

리코타치즈 귤 샐러드를 먹으며 떠올리는 친절한 침묵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이에요.

산뜻한 음식을 만들어 커피 한 잔과 먹는 그 여유가 참 좋아요.

스스로를 위한 최소한의 챙김이죠.


메뉴가 매일 달라지진 않아요.

하나에 빠지면 한동안은 질릴 때까지 그것만 먹거든요.

요 며칠 아침 행복의 원천은 ‘리코타치즈 귤 샐러드’.


팬시한 레시피로 젠체하고 싶지만 사실 재료도 준비 방법도 너무나 간단해요.

<재료>
1) 귤 한 개
2) 리코타 치즈 한 스푼
3) 발사믹 소스 조금
4) 신선한 샐러드 채소 잔뜩
5) 하루견과 한 봉지
끝.

만드는 법은 더 간단해요.


<요리법 X 조리법 X; 준비법 O>

1. 귤 하나를 까서 프라이팬에 앞뒤 뒤집어 가며 구워요.

귤을 굽는 게 포인트예요.

구운 귤은 겉은 바삭(까진 아니고 브슥-), 속은 따뜻, 탱글 한 식감이 돼요.

베어 물자마자 따뜻한 과즙이 생글하게 톡 터지면서 찬 것 투성이인 샐러드를 포근하고 든든하게 만들어요.

먹다가 나중에 귤이 한 조각도 안 보이면 그렇게 서운하더라고요.

2. 샐러드 채소를 씻어서 물기를 털어요.

저는 물기를 빼는 통돌이(?)를 써요.

씻은 채소를 다 집어넣고 팔 근력 운동하는 셈으로 이를 악물고 돌리다 보면 보송한 풀을 만날 수 있답니다.

3. 채소를 큰 볼에 깔고 가운데 리코타치즈를 한 스푼 푹 떠서 얹어요.
4. 치즈 주위로 구워둔 귤 조각조각을 둥글게 빙 둘러 주고요.
5. 토핑으로 하루견과 한 봉지를 뜯어서 술술술 뿌려 줍니다.

견과류는 오독오독한 식감도 더하고, 리코타치즈와 만났을 때 고소함이 배가 되기 때문에 예상외의 ‘킥’이에요.

6. 마지막으로 명랑 핫도그에 케첩 좀 뿌려본 솜씨를 발휘할 시간이에요.
발사믹 글레이즈를 격자로 뿌리면

완성.

견과류 뿌리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완성인 듯 완성 아닌 리코타치즈 귤샐러드

잘 먹겠습니다-.


아침을 꼭 챙겨 먹으려 하는 건

배가 고플 때 성격이 난리 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나만의 리듬으로 잘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죠.

일을 하다 보면 점심과 저녁은 온전히 내 의지로 흘러가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아침 먹으려고 일찍 일어나요.

피곤하지 않냐고요? 오히려 전날 밤 설레기까지 하는걸요.


이쯤 되니 살짝 과한 듯싶죠?

그렇지만 잘 먹는 건 제게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아주 오랫동안 잘 먹지 못했거든요.


극단을 오가는 나날이었어요.

냉장고에 있는 잼이며 소스류까지 뒤져낼 만큼 끝을 모르고 먹다가, 다음 날은 물 조금에 아몬드 몇 알로 버텼죠.

그런데도 제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래선 안된다는 걸 자각한 건

밤마다 먹을 걸 잔뜩 사가지고 집에 가서는

꼭꼭 씹어 정성스럽게 뱉고 있는 스스로를 마주했을 때.

그런데도 ‘먹고 토하지는 않으니까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어 그 생활을 꽤나 이어갔어요.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그때부터 건강한 음식을 준비해 먹는 데 에너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파는 음식들은 칼로리의 총합을 따지는 강박적 자동장치가 돌아가서 마음 편히 즐길 수가 없었죠.

건강식 레시피를 찾아 시도해 보던 끝에 채식을 접했어요.

‘먹는 게 내 신념이나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구나.’

‘먹는 것=살찌는 것 이 아니구나.’


전 페스코 채식을 하는데요, 가장 만만한 버전이라고 보시면 돼요.

고기만 먹지 않을 뿐 달걀, 유제품 다 먹으니 사실상 채식이라 명하기 머쓱하기도 해요.


채식주의자가 된 이후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을 때면 심심치 않게 듣게 된 질문, '왜 채식을 하는지'.

처음엔 답하기 오래 걸렸어요.

딱히 둘러댈 만한 이유가 없었거든요.

진짜는 너무 개인적이어서 말할 수가 없었고요.

덮어 두고 지나가기엔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어요.

고민한 끝에 고양이를 키우면서 다른 동물의 살을 먹고 싶지 않아졌다고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이야기하면 모두 대번에 수긍했기 때문에, 한동안 아주 요긴했죠.

그런데요, 정작 우리 까미는 갓 삶은 닭 가슴살을 제일 좋아하는 철저한 육식묘였거든요.

그래서 고양일 이유로 댈 때면 속으로 키득키득 웃었어요. 나만 아는 농담을 하는 기분.


까미를 보내고는 그 이유마저 쓸 수 없게 됐어요. 아프게 보낸 아이를 혼자만의 하이개그 코드로 삼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그때쯤 그런 질문을 받는 데 익숙해져서 상황마다 기분에 맞춰 답을 달리하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렇지만 가끔은 그마저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긴 해요.

'까탈 부린다' 거나 '유난이다', 혹은 '유행을 따른다'고 보는 시선들을 마주할 때죠.

그렇다고 앞에 앉혀 두고 내 지난한 섭식 패턴의 역사를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잖아요.

비뚤어진 스스로의 일부분을 드러내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오늘 이곳에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조금 비겁하지만 익명성이 주는 용기를 빌려서.


어디선가 저같이 대의 없고 두루뭉술한 채식주의자를 만나신다면, "아" 하고 별다른 질문 없이 넘어가 주세요.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에 "그렇구나." 하고 말듯이.


당신의 친절한 침묵에 무한한 감사로 답할게요.


때로는 묻지 않는 게 배려일 수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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