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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Feb 24. 2024

아들? 딸?

4주 만에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다.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라 그전보다 기대가 되고 기분이 들떴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을까? 아들일까? 딸일까? 여태껏 살면서 이런 설렘을 안아 본 적이 없다. 따사로운 봄날 하늘을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 꼭 이런 기분일까.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들어갔다.


초음파실로 들어가 뱃속의 아이를 만났다.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화면을 하나씩 짚어주시며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어디가 머리이고 팔이고 다리인지 설명해 주셨다. 


“자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머리입니다. 그리고 여기, 보이시죠? 다리, 다리예요.”


그냥 보았으면 머리와 다리까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손가락까지는 구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손가락이라고 하니 손가락인가 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명확하게 아이의 형체가 쏙 들어오지는 않았다. 설명을 듣고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을 이어 붙여 보니 아이의 형체가 어렴풋이 그려졌다. 처음엔 작은 점처럼 보이던 호꼼이는 이제 꽤 커서 12cm나 되었다고 한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손가락도 생겼다. 신체 기관도 거의 다 생겨서, 이제는 자라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다.


사람의 몸을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경이로움 그 자체인데, 작은 점 하나가 어느새 사람의 형체를 갖출 만큼 자라났다는 것도 놀랍고 또 놀라웠다. 또 하나의 세계가 아내의 몸을 통해서, 우리 부부에게 찾아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거구나, 부모가 되어 간다는 게.’


마음으로 놀라워하고 또 놀라워했다. 감탄하고 또 탄복했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중에 생명보다 더 값진 게 있을까 생각해 본다. 꽤 많은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아이를 만나는 순간만큼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길이 없을 것 같다. 초음파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시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들었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구나.’


됐다. 뭉클하다. 몸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가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4주 동안 열심히 잘 자라준 호꼼이도 대견하게 여겨졌다. 아주 잠깐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운을 떼셨다. 오늘 오면 성별을 알 수 있을 거라던 말씀이 생각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였다.


“어디 보자, 여기가 다리입니다.”


아까도 한 차례 다리 쪽을 짚어 주셨는데 다시 다리 쪽을 짚어 주셨다.


“자, 다리 사이에… 보이시죠?”


‘아니요’라고 말할 뻔했다. 정말로.


초음파 영상이 정확히 보이는 것 같아도 사실 그렇지 않다. 의사 선생님은 정확히 짚어서 보여주셨지만 내가 봐서는 아리송했다. 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입덧이 심한 아내를 보면서 왜인지 나도 모르게 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들이군.’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게 웬걸 의사 선생님은 “아무것도 없네요.”라고 하신다.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았는데…


“딸입니다.”


입덧이 심하니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아내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드디어 호꼼이의 성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들이어서 좋고, 딸이어서 좋은 게 아니라 내 아이가 점점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실감이 난다. 처음엔 ‘아이가 생겼구나.’에서 시작해 이제는 점점 뚜렷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초음파로만 보다가 나중에 실제로 만나게 되면 어떨까? 아이를 처음 만나는 순간은 얼마나 행복할까? 처음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날은? 아이가 나를 쳐다보는 그 순간을 내가 잊을 수 있을까?


단지 하나의 세포였던 아이가 점점 자라고, 태어나 내 삶 그 자체가 될 것을 생각하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행복해졌다. 아이는 아내의 뱃속에서, 내 속에서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 우리 부부에게 의사 선생님은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딸이구요, 아이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잘 자라고 있으니 됐고, 성별도 확인했으니 됐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꾸벅 하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2차 기형아 검사를 위해 채혈을 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고마운 일들 뿐이다.


거의 음식도 먹지 못하고 토하면서도 잘 견뎌준 아내에게 고맙다. 처음 겪는 임신이고 몸의 변화가 낯설 법도 한데 잘 견뎌준 아내가 자랑스럽다. 뱃속에서 잘 자라준 아이에게도 참 고맙다. 


딸이어서 특별히 더 기쁘거나 좋은 건 아니다. 딸이라서 좋은 건 맞지만 꼭 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새 이만큼 잘 자라서 성별을 가진 태아가 되어서 감사한 것이다. 한 세상이, 한 생명이 태어난다는 건 생각하면 할수록 참 멋진 일이다. 어떤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올지, 어떤 세상이 또 나와 아내의 세상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어떤 아빠가 ‘좋은’ 아빠인지 알기 어렵다. 유명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것처럼 나도 아빠가 처음이라 잘 모른다. 이제 수많은 처음을 겪어 나가게 되겠지 생각할 뿐이다.


정답이 있을까, 정답은 저기 수학 시험지를 만났을 때나 필요한 것이다. 사람 사는데 정답이 어디 있으며,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데 정답이 어디 있을 것인가. 온갖 좋은 가치를 엮어서 가정을 꾸리고자 해도 뜻대로만 안 되는 것이 사람사이의 일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그냥 ‘잘’ 살고 싶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 부부에게 찾아와 준 아이를 기뻐하고, 함께 있는 동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으로 살고 싶다.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만큼 특별한 만남이 세상에 또 있을까. 누구나가 원하는 이상이 아닌 우리만의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가족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내게 부여된 숙제도 점차 마감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성별도 결정되었으니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 이름을 잘 지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세상에 예쁜 것들은 다 이름에 담아서 호꼼이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 


내게 찾아온 새 생명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노라니,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도 나를 처음 만나셨을 때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살아계셨더라면 손녀딸 볼 생각에 참 좋아하셨을 텐데. 가수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날들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내게 찾아온 호꼼이가 내 삶의 새 의미가 되어 주고 있는 것처럼, 내가 세상에 올 수 있도록 해 준 우리 아빠도 나를 보며 같은 마음을 가지셨겠지.


생명은 하늘이 낸다고 하지만, 사람은 부모의 몸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다. 가족이라는 특별한 만남이 몸을 매개로 이어져 있구나, 신비스럽다. 


태어날 아이를 생각해도 기쁘고 설레고, 나를 만나고 기뻐하셨을 아빠를 생각해도 행복하다. 참 좋은 날이다. 고마운 날,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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