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입덧!
“토 안 하니까 좀 살 것 같다.”
처음 임신 진단을 받은 6주 차 때부터, 현재 14주 차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아내를 힘들게 했던 입덧 증상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입덧은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시작되어서 점차 심해졌다. 초기에는 피해야 할 음식을 메모해 두었다가 조심하곤 했는데, 나중에는 무엇을 먹어도 다 게워내는 지경이 되어서 뭐가 됐든 먹을 수 있으면 먹고 나서 구토하더라도 먹게끔 했다.
아내는 두 달 정도 고생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아침이면 공복 상태여서 속이 안 좋고 어지러웠고, 뭘 먹고 나면 영 소화가 안되어서 구토하기 일쑤였다. 안 먹으면 비어서 힘들고, 먹으면 가득 차서 힘들었다. 참기름이나 김치 같은 음식은 냄새도 힘들어했고, 간혹 먹을 수 있는 몇몇 음식들도 제대로 소화시키는 날은 드물었다.
장모님이 일주일 내내 계시면서 음식을 해 주셨을 때도, 아내는 음식을 먹기는 했지만 결국 소화시키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속이 안 좋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심할 때는 새벽에 깨서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기도 했다.
그러던 아내가 14주 차에 들어서면서 많이 나아졌다. 김치 냄새도 맡기 힘들어해서 같이 식사를 할 때는 김치를 잘 먹지 않았는데 어쩐지 오늘은 아내가 김치를 썰어 상 위에 올려 주었다. 식사량도 그전에 비하면 양이 늘어서 이제는 1인분을 먹는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아내는 카페에 앉아 책 읽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최근엔 커피 냄새도 힘들어 도통 가지 못했다. 많이 나아진 덕에 오늘은 김치를 곁들인 떡국을 해 먹고 카페에 다녀왔다.
카페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이제 좀 살 것 같다.”며 입덧이 한 풀 꺾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최근 들은 말 중에 이만큼 내게 안도감을 준 말이 없다. 최근 며칠 아내의 증상이 조금 완화된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아직 조심스러웠는데 아내 입을 통해서 살 것 같다는 말을 들으니 이만큼 안도가 되는 말이 없다.
생명을 품고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 고비 입덧의 어려움을 겪어온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타인의 삶을 볼 때는 복잡한 일도 간단하게 보였다.
“그 친구 요즘 어떻게 지낸대?”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지.”
이 한 줄 대답도 쉬운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열 달 동안 품는 것도 그냥 되는 일은 아니고, 낳는 것은 또 말해 무엇하며, 어엿한 인격으로 키워내는 것은 오죽하랴. 결혼을 하고 태중에 아이를 함께 기르며 나는 삶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삶을 자세히 겪어가며, 가보지 않았던 길을 아내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내게도 아내에게도 지금 경험은 처음 것이며, 남들과도 다른 우리만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에는 때로 달갑지 않은 상황이 많이 있다. 먹고 돌아서면 토하는 생활이 8주간 지속되었다. 옆에서 보는 남편도 괴로운데,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그렇지만 견뎌내고 보니 입덧 속에도 배울 점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임신을 통한 몸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며, 먹고 마시는 당연한 일부터 어려움을 겪은 아내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대신 겪어줄 수 없는 입덧이지만,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로하고 등을 두드려 주고, 때로 퇴근길에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 오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아내는 입덧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매일 도시락을 싸 주며 자신 때문에 나까지 음식을 잘 못 먹게 되지나 않을까 배려해 주었다. 우리는 입덧이라는 달갑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오히려 더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무 고통 없이 유쾌한 나날들만 이어지면 좋겠지만 삶에는 때로 고통이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 자체를 삶으로 받아들이고 꼭 끌어안는 것이다.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 또한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중에 할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을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 것만 내 삶의 일부이고, 쓴 것은 내 삶이 아니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임신 14주 차에 접어들었다. 아내는 요 며칠 구토하는 빈도가 줄었다 싶더니, 지금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멸치 볶음을 하고 있다.
잘 견뎌온 아내에게 고맙다.
대신 입덧을 가져가 줄 수는 없었지만 입덧을 겪으며 우리는 더 돈독해졌다. 이 시기를 잘 견뎌온 나와 아내에게 잘했다고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이제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약 180일 정도 남았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하는 남은 여생이 있다. 나와 아내로 이루어진 작은 가정에 한 존재가 찾아오고, 남은 인생을 함께 할 것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