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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an 27. 2024

임신 12주 차

아내가 아이를 품은 지 12주가 되었다. 우리에게 찾아온 새 생명을 마음껏 반가워하고 신비스러워했다. 이제는 태중의 아이도 우리 부부의 일상이 되었다. 처음 아이를 만나 느꼈던 낯선 신비로움이 이제는 일상을 곱씹으면 배어 나오는 은은한 신비로움이 되었다. 일상이 또 다른 일상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이 변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때마다 새로운 신비가 나를 찾아온다.


2주 만에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태중의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다. 1차 기형아 검사 결과에도 별다른 소견은 없었다. 석 달 동안 아이를 잘 품고 길러온 아내에게 고맙고, 태중에서 잘 자라준 우리 호꼼이에게 고마웠다. 나도 아빠로서 내 몫의 책임을 다하여야 하겠다 생각을 해 본다.


병원을 나서서 아내가 좋아하는 김밥 가게에 들러 다시마 김밥을 사 먹고, 작년 여름부터 가고 싶었던 카페에 와 앉았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회사를 그만둔 직후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약간은 어둡고, 빗소리가 들리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공간은 넓었지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통유리 너머에 맺힌 물방울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몇 번 그곳을 찾으려 애써 보았지만 이거다 하는 곳을 발견하지는 못해 그냥 그렇게 잊어 가고 있었는데, 오늘 마침 그곳을 발견했다.


지금 내가 앉은 곳은 왕복 2차선 도로변에 위치한 카페 안이다. 카페의 양면은 통창으로 되어 있다. 한쪽은 통창을 수백 권의 책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책장 사이 통유리 창으로 건너편 나무와 돌담이 보인다. 마치 책 속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인다. 가지런히 꽂힌 책들을 두루 살펴본다. 반가운 책들도 있고 처음 보는 책들도 있다. 읽고 싶은 책들도 있고, 이미 읽었던 책도 있다. 책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책 제목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내와 반가운 마음을 나눠 본다. 좌석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카페 내부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손님이 두 분 정도 더 계신다. 저마다 책을 읽기도 하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책장을 한 번 둘러보고 나와 아내도 한쪽 유리창가에 은은하게 햇살이 비치는 자리를 골라 앉는다. 흰 커튼이 달린 통유리 창으로는 겨울날의 햇살이 따사롭게 몇 가닥 비추이고 있다. 건너편엔 수확을 완료한 귤나무들이 돌담 너머로 바람에 넘실댄다. 이따금 지나다니는 차들을 보기도 하고, 푸드덕대며 날아다니는 꿩인지 새인지 모를 것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카페에는 가사가 없는 피아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캐럴 몇 곡, 자장가 몇 곡, 모차르트 몇 곡이 번갈아 나오고 있다. 


꿈속에서 보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곳은 아니지만, 이곳에 오고 싶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한적한 곳이고 손님도 많지 않은 개인 카페지만 쫓기듯 글을 쓰지 않아도 되어서 참 좋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아내가 오늘은 왠일로 바닐라 라떼를 먹겠다고 한다. 연신 구역질을 하고 구토를 하던 아내가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카페인을 먹는 게 괜찮을까 걱정이 되기는 했다. 하루 한 잔 정도는 괜찮다 한 의사 선생님 말을 떠올렸다. 시원하고 달콤한 바닐라 라떼 두 잔을 시켜 나란히 마셨다. 


멋지게 행복한 날이다. 이만큼 좋을 수 없다. 


나와 아내에게 찾아온 새 생명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몇 달 전부터 찾던 곳을 발견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곳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그림을 그리듯 쓰는 연습을 해 본다. 동시에 12주 차 검진일의 일을 글로 남기고 있다. 


쓰면 쓸수록 내가 되어가는 것을 경험한다. 적어도 쓸 때만큼은 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때로 꺼내 놓기에 조금 어설픈 글이 되기도 하지만, 점차 내 글도 좋아질 것이며 글을 쓰는 내 삶도 그와 함께 좋아질 것을 믿는다. 다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천부적인 재능, 글을 쓸만한 자격 같은 이야기는 믿지도 않고 하지도 않기로 했다. 계속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간혹 일필휘지로 명문을 써내는 천재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게 나는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꾸준히 길게 써야 할 것 같다.


잘 해야 하고 완성된 일만을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선택한 것들로 내 삶을 채워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글을 쓰며 삶을 채색하고, 인생이라 부르는 한 권의 책을 마저 다 써내려 가고 싶다. 오늘도 훗날 돌아보면 엇비슷한 하루가 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엉성하나마 하루를 나의 언어로 구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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