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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an 13. 2024

끝나지 않는 입덧

아내가 임신한 지 10주가 되었다. 아이는 아내 몸속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태동을 느낄 수도 없지만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매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의 입덧이 날이 갈수록 점점 강도가 세졌기 때문이다.


아내의 헛구역질 빈도와 함께 먹을 수 없는 음식 리스트는 점차 늘어갔다. 과식은 물론이고 볶음밥에 이어 이제는 즐겨 먹던 과일 종류도 아내를 힘들게 하는 음식이 되었다. 아주 극소량의 음식만을 먹어야 했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소화되지 못했다. 아내는 레몬과 생강도 아예 맛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이번 주는 특히나 심해서, 아내는 식사를 하고 나면 꼭 헛구역질을 연신 해댔고 거의 매일 일정 부분의 음식을 게워냈다.


입덧 캔디를 물고 있어도 잠시 뿐이고, 물을 마시는 일조차 비린맛이 심해서 잘 마시질 못했다. 이제 바깥 음식을 먹는 일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혼자 있어도 음식을 맛깔나게 차려서 골고루 먹는 아내에게는 굉장한 고역일 것이 분명했다.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먹고 싶지 않고, 먹고 난 뒤 탈이 나는 음식 종류는 늘어갔지만 먹고 싶고, 먹어도 괜찮은 음식은 찾기가 어려웠다.


“속이 안 좋다.”


아내는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달고 지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먹을 수 있는 음식 리스트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먹을 수 있기만 하면 좋겠다. 그게 뭐가 됐든 간에.


“수제비 먹을까?”


눈 뜬 직후 계속 속이 안 좋다고 하던 아내가 왠일로 먹고 싶은 메뉴가 생겼다. 먹고 나서 어떻게 되든 간에 일단 먹어야 했다. 레시피를 열심히 찾아보던 아내는 물 양과 밀가루 양을 계량하며 열심히 반죽을 했다. 계량해서 반죽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아주 좋았으나 아내는 수제비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아내는 계량컵에 밀가루를 부었다가 물을 부었다가 하면서 뭔가 만들고 있었지만 손에 붙는 밀가루 절반, 그리고 그릇에 붙은 밀가루 절반, 남은 반죽은 아기 주먹만 한 것 하나뿐이었다.  


“물이 좀 많은데?”

“아니야, 밀가루를 더 넣어야 해.”


수제비 초보인 우리 둘은 밀가루와 물을 번갈아 넣어가며 반죽을 해댔다. 식용유까지 좀 섞어서 손에 안 달라붙게 하고 나서야 겨우 반죽이 완성되었다. 최초 예상했던 반죽의 크기보다 다섯 배는 커져 있었다. 반죽을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야채를 썰고 육수를 냈다. 액젓을 몇 스푼 넣어주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반죽을 꺼내 손으로 뚝뚝 떼서 냄비에 넣었다. 옆에서 보던 아내는 밀가루가 너무 두껍다며 직접 밀가루를 떼다가 냄비에 넣었다. 


“이렇게 해야지, 알겠어?”


둘 다 잘 못하는 수제비를 우당탕탕 만들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수제비는 먹고 싶지만 반죽은 못하는 아내, 반죽은 어찌어찌했지만 밀가루를 덩어리째 냄비에 집어넣는 요령 없는 남편. 처음 의도보다 다섯 배는 커진 수제비 반죽을 다 떼어 넣어서 처음 크기와 비슷해져 갈 때쯤, 아내가 물었다. 


“그만 넣을까?”

“이제 와서 뭘 그만 넣어, 다 넣고 먹어버리자.”


그렇게 해서 수제비 한 솥이 완성되었다. 한 그릇만 먹겠다던 아내는 두 국자를 더 먹었고, 그것보다 더 많은 몫은 내 차지였다. 이걸 어떻게 다 먹나 싶었던 걸 다 먹었다.


오랜만에 맛있게 먹는 아내를 보니 다행스러운 마음에 미소가 났다. 수제비가 입에 맞았기 때문인지 그 이후로 아내는 몇 번의 헛구역질을 했을 뿐, 잘 견디고 있다. 바라기는 잘 소화가 되고,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영양분이 되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밥을 차려 먹고, 집 주위를 좀 걸었다. 아주 느리게 걸으며 봄 같은 제주의 겨울을 만끽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차갑지 않게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닷가 마을의 바람이 참 상쾌했다. 아내도 임신 전만큼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였다.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길고양이들과 인사도 하고, 이따금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한 바퀴 걷고 와서는 시골 마을 드라이브도 다녀왔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수제비도 같이 해 먹을 수 있고, 산책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같이 있을 수 있고, 의지가 되어줄 수 있었다. 대신 고통을 가져가 줄 수는 없지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줄 수는 있다. 부부지만 앞으로 지내다 보면 서로가 대신 져 줄 수 없는 짐들도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 의지할 대상이 되어 주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로 끝나면 그저 나와 다른 한 인간일 뿐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상대의 짐을 짊어진다면 서로에게 좋은 의지가 될 수 있다.


입덧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입덧이 있음으로써 좋은 태도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 


살아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어려움이 없고 고통이 없으면 좋겠지만 때로는 달갑지 않은 역경들이 관계를 더 견고하게 한다. 좋은 시절만을 함께 해 온 사이는 작은 시련에도 금세 깨어지지만, 함께 고난을 헤쳐 온 사이는 쉽게 갈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아내에게 찾아온 입덧은 이제 시작한 우리 부부에게 함께의 가치를 알려주고자 하는 하늘의 뜻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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