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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an 06. 2024

아내의 입덧

남편의 몫

“속이 울렁거려.”


임신한 후 아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먹는 즐거움을 꽤 높은 순위에 두고 있는 아내가 평소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때라면 


“자기, 오늘 고기 구워 먹을까?”


라든지,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갈까?”라는 말을 더 자주 하는데 요즘은 거의 뭘 먹고 싶다는 말보다는 속이 안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먹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쓰인다. 차라리 새벽에 날 깨워서 수박이라도 사 오라고 하면 마음이 덜 쓰일 텐데 좀처럼 먹지 못하고 그나마 먹고 나서도 속이 안 좋아하는 아내를 보며 아내 혼자 아이를 품고 있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쓰인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육아’인 줄 알았는데, 아직 뱃속에서 형체가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에 아내는 온몸으로 육아를 하고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 늘 메스껍고 울렁거리면서도, 아주 안 먹으면 아이에게 안 좋을까 음식을 챙겨 먹고 식단에 신경을 쓴다. 아빠인 나로서는 알기 어려운 책임을 아내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 같다.


몇 주간 함께 여러 음식을 먹어 보면서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그리고 먹고 나서 힘든 것과 괜찮은 것을 기준으로 나누고 있다. 마치 음식으로 지뢰 찾기를 하는 것 같다. 먹고 싶어서 먹었는데 먹은 후에 더 힘든 음식이 있고, 아주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 나는 음식이 있다. 평소 좋아하던 것들도 예외는 없다. 임신 확인 후 6주 정도가 지났는데,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덜 고생스러운 음식은 몇 가지 골라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위험한 음식은 바로 ‘먹고 싶고 좋아하기도 하지만 먹고 나면 탈 나는 음식’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볶음밥이 있다. 떡볶이를 먹고 난 후에 볶아 먹고, 곱창전골을 먹고 난 후에 볶아 먹고, 아구찜을 먹고 난 후에 볶아 먹었다. 결과는 세 번 모두 참혹했다. 더욱이 볶음밥은 늘 과식을 부르는 음식이 아닌가, 아내는 그렇게 먹은 뒤엔 잠들기 전까지 고통스러워했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볶음밥과 과식’이 조합되면 아주 고통스러운 8시간 정도를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 외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 나는 참기름, 치킨, 피자, 파스타 같은 것들은 아예 안 먹으면 된다. 


먹고 싶은데 먹으면 탈 나는 것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가 피하면 된다. 아직 먹고 싶은 모든 음식을 시험해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요즘은 정말 먹고 싶은 경우가 아니면 이미 검증된 안전한 음식 위주로 먹고 있다. 대체로 된장찌개, 김치찌개, 갈치조림 같이 한식 종류이다. 담백하고 소화가 쉬운 죽도 안전한 음식 리스트에 올라 있다. 


맛의 즐거움을 잘 아는 아내로서는 굉장한 고역일 것이다. 먹고 싶은데 먹고 나면 고생이니, 안 먹게 된다. 먹고 나서 고통스러운 게 안 먹는 고통보다 더 큰 것 같다. 나로서는 아내의 메스꺼움을 옆에서 지켜볼 뿐이지만,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까.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그리 심한 편이 아니라며 나를 안심시키고, 이 정도는 견딜만하다며 괜히 너스레를 떤다.


정말 심한 경우에 냉장고 문 여는 냄새에도 구역질을 하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산모가 오히려 체중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긴 하지만, 먹을 때마다 힘들어하는 아내도 절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등을 두드려 주고, 마사지를 해 줄 수는 있어도 입덧의 고통을 분담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2주에 한 번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들어서 아내를 쳐다보는 내 얼굴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득한 얼굴이 된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뱃속의 아이를 보고 나와서 아내에게 한 마디 건넨다.


“키우느라 수고했어, 고마워.”


함께 산부인과를 나서며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같이 죽을 한 그릇 사 먹고, 남은 것을 포장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본인 속도 안 좋으면서 내가 점심에 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나 보다. 아내는 참 착한 사람이다.


죽을 먹고 들어와서도 아내는 속이 안 좋은가 보다. 답답한지 고통스러운 모양이다. 대신 입덧을 해 줄 수는 없지만 남편으로써 내 몫의 육아는 아내를 돌보는 것이다. 죽도 끓이고, 된장도 끓이고, 등도 두드려 주고, 마사지도 해 주면서 같이 책임을 나누고 아이를 잘 길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진 출처 : 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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