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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Dec 25. 2023

아기 이름 짓기

이름, 어떻게 짓는 건가요?

“아기 이름 좀 생각해 봐.”

“아직 남자 아기인지, 여자 아기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래도 좀 생각을 해 놔야지.”


아이 이름을 짓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미도 담아야 하고, 부르기에도 어색하지 않아야 하는데 딱 하나만 골라야 하니 여간 쉬운 결정이 아니다. 게다가 왜인지 내 성씨인 ‘조’를 붙이면 어딘가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탓에, 수많은 아기 이름 후보들은 채택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지금은 돌아가신 장인어른께서 두 딸에게 늘 그러셨다고 한다. 


“두 딸 중 한 명은 아이를 낳으면 남편 성씨 말고 아내 성씨를 따르도록 하여라.”


아내 성씨를 빌려 와 이름을 지어볼까도 생각하고, 번갈아가면서 이름을 지을까도 생각했다. 그러면 형제간에 성씨가 다르니 꽤나 논란의 여지가 될 테긴 할 것 같다. 아내도 그다지 내켜하지는 않는다. 이제 남편 성을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건만, 여전히 아내 성을 따르는 일도 그리 보편적인 일은 아니긴 하다.


아직 아이의 성별도 모르긴 하니, 일단 태명부터 지어주자며 아내와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 아이의 성별이 정해지고 태어나기 전까지 내게는 숙제가 부여되었다. 바로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 좋은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하고, 부르기에도 편해야 하고,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이름이어서는 안 됐다. 거기에 아내의 최종 재가까지 받아야 하니, 쉽게 할 수 있는 숙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이름을 준다는 것은 꽤나 멋진 일이니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전에 열 달 동안 아이를 부를 태명을 짓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육지 것’들이지만, 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제주 방언으로 아이 이름을 지어 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호꼼’은 제주 방언으로 조금, 약간, 잠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우리는 조그맣다의 ‘쪼꼬미’를 떠올리며 ‘호꼼이’로 태명을 지었다. 이제 곧 할머니가 될 키가 작은 우리 엄마는, 호꼼이로 지었다가 아이 키가 작으면 어쩔 것이냐 걱정을 하는 듯 보였다. 아이 키가 작더라도 그건 태명 탓이 아니라 키 작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아빠 탓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지만 말이다.


‘조금만 더’ 자라라는 뜻을 부여하기로 했다. 조금만 더 힘내서 자라달라는 뜻을 담았고, 잠시 후면 만날 거라는 기대감도 담았다. 아내와 나는 호꼼이라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든다. 확 그냥 이름도 ‘금’으로 지어버릴까 보다. 그러면 나의 성씨 ‘조’와 합쳐져서, 조금이 될 텐데 말이다.(아마 이 생각은 아내로부터 반려될 것이다)


태명으로 호꼼이라고 부르는 게 썩 내키지 않아 하는 우리 엄마, 할머니(진)께 물었다. 그러면 엄마는 내 태명을 뭘로 하셨냐고. 엄마 대답이 걸작이다.


“진보 였다.”


삼십 삼 년 인생 처음 듣는 얘기였다. ‘진보’라니. 참고로 당시 정당 중 진보당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셨다. 나날이 발전하고 자라 가라는 뜻으로 진보라는 태명을 붙여 주었다고 하셨는데, 아빠가 그다지 호응이 없어 엄마 혼자 몇 번 부르다가 사라진 이름이라고 했다. 역시 이름이라는 건 여러 번 불러야 그 사람 것이 되긴 하나 보다. 혹시 아빠가 진보라는 태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나를 진보라고 불렀더면 내 이름이 조진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엄마는 별 의견을 내주시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호꼼이가 썩 마음에 들었으므로, 이대로 계속 부를 예정이다. 의미만 잘 연결하면, 조금씩 더 진보하고 발전하라는 뜻도 얼마든지 넣을 수 있는 좋은 이름이다. 호꼼이가 점차 커지고 세상에 나오는 날까지, 새 이름을 열심히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름은 불림으로써 그 사람만의 것이 되어 간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물의 이름부터 사람의 이름까지 이름이 곧 그 존재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이름은 대상의 고유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고민이 많다.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할까. 


좋은 의미를 담되 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기대를 담되 그것이 부모의 욕심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름의 의미는 아이의 존재가 만들어 채워 넣어 갈 테니 말이다. 고민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좋은 이름이 찾아와 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또 읽다 보면, 아이의 이름이 하나 떠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 아이는 생각이 멋진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과, 글과, 생각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한 번 인명용 한자를 뒤적여 보아야겠다.


태명을 붙여 주고, 자꾸 부르다 보니 벌써 아이가 우리 부부 사이에 와 있는 것만 같다. 이래서 태명을 붙이는가 싶다. 


“호꼼아, 우리 호꼼만 있다 만나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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