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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Dec 25. 2023

임신 7주 차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심장소리를 듣는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진기를 꽂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아니면, 일상에서 타인의 심장소리를 듣는 일은 흔치 않다. 극도로 긴장했을 때, 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지만 엄밀히 말하면 소리를 듣는 건 아니다. 함께 사는 아내의 심장소리도 가끔 느낄 수 있을 뿐 직접 듣는 일은 드물다.


이번 주로 뱃속의 아이는 7주 차가 되었다. 2주 만에 다시 병원에 방문했고, 잘 자라고 있음을 확인했다. 아이의 심장소리는 어른의 그것과 비교하여 꽤 빨랐다. 평상시 내 가슴에 손을 얹었을 때에 비해서 두 배 정도 더 빠르게 느껴졌다. 두근-두근-두근-두근, 1센티가 조금 넘는 크기의 아이가 심장소리를 내며 살아 있었다.


아내의 생명 속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아내와 나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되었다. 어떤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을까,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하며 우리는 신비로운 처음을 함께 했다. 새로 찾아온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한 가족이 되어 앞으로 무수한 처음을 함께 맞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선물처럼 여겨졌다.


아내의 뱃속에 생명이 또 있어서 그런 걸까. 아내는 처음 산부인과에 다녀온 뒤로 자주 속이 안 좋다고 했다. 하루 종일 속이 더부룩하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막상 입에 가져다 대면 먹을 수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면 풍기는 김치냄새에도, 김밥에 발린 참기름 냄새에도 아내는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먹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아내인데, 맛보는 재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러면서도 뱃속의 생명이 신경 쓰여 내키지 않는 숟가락을 들었을 아내다. 게다가 하루종일 더부룩한 속을 붙잡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상대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먹을 때만큼은 괜찮은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먹는 것도 힘든 모양이다. 


성탄절 점심에 함께 죽을 끓여 먹었다. 아내에겐 외식도 버거운 일이고, 시켜 먹는 바깥 음식도 힘들어 보였다. 마트에 들러 죽에 넣고 끓일만한 것들을 좀 샀다. 아내가 먹을 수 있을 만한 게 더 있을까 마트를 빙글빙글 돌았다. 죽에 넣을 참치와 호박을 담고는, 과자 몇 봉을 집어 들고 집으로 왔다.


돌아와 보니 아내는 죽을 끓이고 있었다. 내가 사 온 재료 중에 참치만 죽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내 저녁을 차려주려고 사 오라고 했던 것이다. 아내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는 지금 소화가 안 돼서 죽을 먹어야 하는 지경인데, 언제 내 저녁밥을 신경 쓸 겨를이 있다는 말인가. 음식 냄새도 힘들어하면서, 자기가 죽을 끓이고, 죽을 안 좋아하는 나까지 신경 써 준다는 것이 물론 고마웠지만 나까지 신경 쓰게 한 것은 아닌가 미안했다.


아내도 처음이다. 생명을 품게 된 것이 처음이고, 엄마가 된 것도 처음이다. 평생 속이 안 좋아서 뭘 못 먹은 적도 없는 사람이다. 입덧도 처음이다. 좋아하던 매콤한 음식도, 파스타도 죄다 먹을 수가 없다. 나는 그저 이런 아내를 처음 보고 있을 뿐이지만, 아내는 변화를 몸소 겪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태중의 아이를 생각하고, 나를 먼저 생각해 주었다. 대신 아이를 품어 줄 수는 없지만, 무엇이든 아내를 위해 헌신하고 내어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내는 내게 받은 것이 더 많다고 늘 말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진 빚이 몇 배는 더 많다. 아내가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나는 이 두 존재 모두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우리 가정에 찾아온 선물이다. 새로운 생명은 우리 가운데 처음 생명을 품는 신비를 경험케 해 주었고, ‘나’만 생각했던 좁은 세계를 넘어 ‘너’를 ‘나’로 여길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아이는 생명 그 자체로서의 선물임과 동시에, 가정을 가정 되게 해 주는 결속의 징표이다. 아이가 찾아옴으로 아내와 나는 더 사랑하게 되며, 서로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던 두 존재가, 어느새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인 듯하여 놀라울 뿐이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건만, 아이는 우리의 마음과 삶의 모습을 이미 조금씩 바꾸어 가고 있다. 아이가 뱃속에서 지어져 가는 동안, 나와 아내도 한층 더 성숙한 인간으로 지어져 가게 되리라. 겸허한 마음이 되어 삶이 가르치는 것들을 배워야겠노라 마음의 옷깃을 여며 본다.


다행히 죽은 아내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아내는 죽을 두어 번 나눠서 떠먹고는,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안쪽 방에서 수시로 거실에 있는 아내를 내다보며 근래 며칠의 일을 글로 부지런히 옮기고 있다. 글을 쓰며 아내 생각을 하다 보니, 또 고마움이 느껴진다. 거실에 좀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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