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2019
"21세기에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된 애거서 크리스티와 선한 사마리아인"
나이브스 아웃은 저명한 소설가 할런의 죽음과 그의 유산을 두고 일어나는 일을 다룬 후더닛 무비이다. 20세기, 애거서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추리 소설의 전성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대저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스테리를 21세기에 맞게 재구성하여 화면에 담아냈다.
"브누아 블랑"이라는 개성적인 탐정 캐릭터가 등장하고, 오래된 대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에 여러 명의 용의자들. 만약 당신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큘 푸와로 시리즈의 팬이라면 눈에 익을 이야기의 구도를 영상으로 표현하여, 해당 장르의 팬에게는 선물 같을 영화이다. 시대가 흘러 단종된 장르의 21세기 버전, "뉴트로" 탐정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장르 영화로써의 본연의 역할을 잘 해냈을 뿐 아니라, 기묘한 사건 앞의 수많은 인간 군상을 다루면서 현시대를 바라보는 풍자극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작품 본연의 재미를 지키면서 이면에 메시지를 담아내는 어려운 일을, 이 영화는 성공적으로 해냈다.
온 가족이 모인 자신의 생일파티 다음 날 목이 칼로 그어진채 발견된 소설가 할런 트림비. 그를 죽인 범인을 찾아 달라는 익명의 편지가 탐정 브누아 블랑에게 도착했고, 브누아 블랑은 경찰에 고문 역으로 함께 하여 일가족을 면담한다. 사건이 일어난 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할런 트림비와는 어떤 관계였고, 최근에 다툰 일은 없었는지.
취조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는 블랑에게 거짓말을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이 있다. 첫째 사위인 리처드는 아내 몰래 외도를 하고 있던 것이 할런에게 걸려 스스로의 입으로 전하지 않으면 첫째 딸 린다에게 알리겠다는, 둘째 며느리인 조니는 딸의 학비에 대해 할런에게 거짓말을 하며 학비를 이중으로 수령하던 것이 걸려 앞으로 모든 지원을 끊겠다는, 셋째 아들 월트는 할런의 뜻을 거역하며 무리하게 미디어 믹스 판권 계약을 진행하려 했다가 출판 회사에서 손을 떼르고 하는, 최후통첩을 받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은 손자 랜섬은 생일 파티 당일에 할런과 크게 다투고 자취를 감춘 상황. 이들 모두 할런과 문제 없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척 했지만, 브누아 블랑은 이들의 실체를 파악한다.
이들과 대비되는 등장인물이 있다. 할런의 담당 간병인인 마르타인데, 선천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자동적으로 구토를 하는 증세가 있는 그녀를 통해 할런은 추리해낸 이 가족의 진실을 재확인하고, 그녀를 자신의 조수 삼기로 한다. 할런의 혈육들이 할런의 위대한 성취를 빨아먹는 한심한 인간들로 자라나는 동안, 마르타는 할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오목을 두며 그의 친구가 되어준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숨겨진 진실이 있었으니, 이 순간 영화에 나타난 진상은 할런에게 진통제를 주사하다가 약병을 헷갈려 모르핀의 치사량을 주사해버리자, 할런이 패닉에 빠진 마르타를 대신하여 이를 무마하기 위한 계획을 짜 마르타에게 알려주고, 스스로 목을 그어버린 것. 마르타는 죽음을 선택한 할런을 뒤로하고 할런이 전해준 계획을 따라, 탈출하고, 알리바이를 만들며, 진실을 적당히 이야기해 사실을 숨긴다.
그런데 할런의 죽음 이후 변호사에 의해 공개된 유언장은 유산의 전부를 마르타에게 남긴다고 적혀 있었고, 트림비 가는 아수라장이 되며, 마르타는 더욱 혼란스러운 상태로 도망친다. 심지어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브누아 블랑도 끊임 없이 그녀에게 접근하는 상황. 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사이에서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이 미스터리에 숨겨진 진실은 어떤 것일지, 영화는 한시도 쉬지 않고 재빠르게, 하지만 치밀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여기서부터는 작품의 핵심 스포일러를 다룹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먼저 보고 와서 이 글을 마저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가 긴박하게, 또 치밀하게 쓰여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과 별개로, 영화에 등장인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화목하게 보였던 트림비 가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할런의 기대를 벗어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인물들이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행세한 것과 달리 이들은 할런의 성취에 기생하여 살아왔을 뿐이었다.
첫째 사위 리처드는 외도 중이었고, 둘째 며느리 조니는 사업이 파산하여 할런을 속여 딸 메그의 학비를 이중으로 타먹는 것으로 생활을 영위해왔고, 셋째 아들 월트는 아버지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소설의 영화화를 욕심으로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셋째 아들 월트의 아들인 손자 제이콥은 핸드폰을 손에 달고 살면서 손가락으로 혐오질을 하는 소년이고, 할런이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했던 리처드와 린다의 아들인 랜섬은 한량에 건달이었고, 집안에 오래 함께 했던 교용인들을 차별하여 대우했으며, 결정적으로 할아버지의 유산을 노려 약병을 바꿔치기해 유산을 마르타가 상속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 살인사건의 진범이다.
그나마 첫째 딸인 린다와 손녀 메그는 영화 초반엔 정상인으로 그려진다. 린다는 성공한 사업가이고, 메그는 고용인인 마르타에게도 차별 없이 친구가 되어주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 이들 역시 할런의 성취에 기생한 위선자들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사실 린다는 할런이 준 백만달러가 있었기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메그는 할아버지가 준 학비에 의지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 중반 할런이 유산을 전부 마르타에게 남긴다는 유언장을 낭독되자, 린다는 원색적인 욕설을 마르타에게 쏟아내며, 메그는 가족의 부탁으로 유산을 돌려줄 것을 마르타에게 전화하여 부탁하고 마르타의 가족이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자신의 가족에게 알려 마르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트림비 가의 인물 모두가, 마르타를 위하는 척하고, 할런을 사랑하는 척하지만, 할런의 기대를 저버리며 그의 유산에만 기생하고 있었고, 마르타가 유산을 타게 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서 유산을 뺏어오려고 한 위선자들이었다. 심지어 영화 내내 마르타의 국적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 마르타의 국적은 매번 다르게 불리운다. 미국의 여러 계층을 각각 상징하고 있는 이들 모두는 할런의 진정한 가족이 되어주지 못했으며, 유산을 (특히 집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이와 반대로 마르타는 비록 할런과 피로 이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할런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었고, 책임감 있는 간병활동으로 랜섬이 약병을 바꿔치기 했음에도 올바른 약을 투여했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을 협박하는 줄 알았던 프랜을 죽어가게 두지 않고 살리려 노력했다. 프랜이 살아남는다면 자신이 할런의 죽음의 원인으로 몰려 유산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심성은 프랜이 죽어가게 둘 수 없었기에, 그는 구급대를 부르고 응급처치를 한다. 그녀의 이 선택이, 오히려 그녀가 무고함을 증명하는 열쇠가 되어 그녀를 유산의, 집의 적법한 상속자가 되게 하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내 집, 내 규칙, 내 커피"라는 문구가 적힌 머그잔을 든, 집을 적법한 상속자 마르타가, 집 안에서 쫓겨난 위선자들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는 단순히 혈통만으로 이 대저택을 상속받을 수 없다고 말하며, 진정한 상속자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사람을 살리는 착한 심성의 마르타와 같은 이라고 말하고 있다. 점점 더 민족주의로 돌아가려하는 전세계의 모습, 특히나 미국의 모습을 바라보며 라이언 존슨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건의 진범이자, 영화 내의 가장 악인인, 할런과 가장 닮았으나 현실과 연극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랜섬 역을 맡은 배우가 크리스 에반스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볼 부분이 많다. 미국의 이상을 상징하는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의 얼굴이 완전히 뒤틀려 미국이라는 대저택의 상속자에서 멀어진 이의 얼굴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는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대전제 앞에서 "누가 나의 이웃인가?" 묻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예수의 비유이다. 강도에게 구타당한 이를 두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갔지만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그를 구해줬을 때, "누가 그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느냐?"하고 되묻는 비유. 이 영화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다.
적법한 상속자로 보였던 인물들(제사장-레위인/트림비 가)은 위선적인 행위를 보인 것에 반해, 이름조차 부르기가 꺼려지는 사마리아인과 매번 다른 국적으로 불리는 이민자 마르타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죽어가는 이를 살리며 그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었고, 결국 상속자에 적합한 인물로 판정받았다.
이 영화는 결국 고전적인 비유인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와, 역시 고전적인 애거서 크리스티 풍의 탐정 이야기의 플롯을 결합하여, 21세기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시대에 걸맞는 긴박한 편집과 치밀한 복선과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선보이는 데에 성공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뉴트로 탐정 영화.
정말 끊임 없이 정보를 제공하면서 관객을 정신 없게 만드는 영화이지만, 정신을 놓치지 말고 장면 장면을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 정말 짧게 지나가는 모든 장면과 대사에 치밀하게 짜여진 복선이 있기 때문. 영화의 마지막에 뿌려둔 복선들을 모두 수확할 때 느껴지는 추리물의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영화가 얼마나 장르에 충실했는지 말해주는 결말이기도 하다. 정말 잠시도 정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