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년도도 지나간다. 평화로웠던 베를린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박스생활한지 3개월째. 이제 점점 힘들다. 오늘 시댁과 함께하는 저녁상에서 누군가 오슬로에서 음식점을 추천해준다고 어떤 음식을 먹고싶은지 물어봤다. 그 질문이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내가 무슨 음식을 먹고싶은지, 음식이 맛있다고 느꼈던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입맛이 없어서 하루종일 굶다가 저녁 한끼로 배를 채운날이 많았고 너무 배가 고플때는 요리할 의지도 없어 초콜릿이나 캔디를 먹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3일은 시댁에서는 항상 같은 음식을 먹는다. 6년 전 처음 시댁에 와서 건조 양고기 핀네숏을 처음 먹어보았을때는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 느낌은 어땠는지 같은 일을 반복하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카라멜 푸딩과 크림도 너무나 맛있게 먹었는데 이번에는 맛이 있으면서도 어쩐지 금방 숟가락을 놓았다.
저번달에 한국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기대했던 음식을 먹었으면서 정작 2키로나 빠져서 왔다. 몸무게는 10년 넘게 똑같았는데 지난 몇달간 조금씩 살이 빠졌다. 이렇게 입맛이 없었던 적이 있었을까. 모유수유 할때 아무리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았던 허기는 옛날이 이야기가 되버렸다. 사람의 정신이라는게 참 이상하다. 이렇게 사는 즐거움을 잃어버릴수가 있다니. 어떤때는 큰 돈을 주고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는걸 즐거움으로 여기기도 했다. 나는 현재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마음에 여유가 단 한칸도 없어 무거운 돌덩이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매일. 선물도 차마 미리 준비하지 못해 부끄러운 하루. 그래도 어떻게 채면은 살리도록 겨우 몇가지 준비를 했지만 선물을 좋은 마음으로 하는것도 받는것도 전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작년에는 많은 선물을 사서 주는게 기쁨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시간을 나누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좋은 와인을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친구들과 카드게임을 하는것이 즐거움이었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는것도 즐거움이었다.
밖은 눈이 한가득 내려 어둠이 깔린 하늘에도 땅은 하얗게 빛이 난다. 나는 이렇게 외로움을 느낀적이 있었을까. 기댈 곳이 없다는 마음이 이렇게 외로운 것이었나. 이런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일까. 톡 건드리면 터질것같은 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 아무런 내용이 없는 대화를 나눈다. 베를린에서 잠깐 만난 친구가 잘 지내냐는 질문에 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내가 괴로운건 맛없는 빵을 먹는것도 아니고 추운 날씨나 햇빛이 안드는 어두운 날들도 아니다. 연고 없는 상태의 참을수 없는 외로움. 남편의 가족도, 나의 가족도 말을 터놓고 기댈수 없는 외로움. 이렇게 가족의 존재가 그리웠던 적이 없다.
내가 편하게 누울수 있는 나의 집이 생기면 조금 나아질 것이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안락한 소파가 없어도 나의 공간에 누울수 있으면 조금이나마 내가 속한 세상에 소속감이 들지 않을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을 경험함으로 감사할 수 있는 순간이 올것이다. 그때까지는 조용히, 차분하게, 숨을 참듯이 참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