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양보다 질이다.
많은 곳에서 진리인 이야기다. 이 말을 두고 많은 이들이 ‘양은 포기하고 질을 추구하겠다.’로 생각하는데 내 해석은 조금 다르다. ‘결정적인 순간엔’이라는 말이 앞에 빠져있는데, 결국 중요한 순간에 승패를 가르는 것은 양보다는 질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고귀한 경구가 먹히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머리숱이다.
특히 나처럼 40대 후반이 되면 질(머리결, 색)은 큰 의미가 없다. 머리가 온통 돼지털같은 머리카락으로 덮여있어도, 꼬불거려도, 심지어 하얗게 변해도 일단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새는 펌 기술도 좋고, 염색약도 좋아서 ‘아름다운 갈색, 머↗ 리↗ ’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마당에 잔디가 있어야 예쁘게 가꿀 수 있는 법.
지금은 동년배에 비해 평균 또는 살짝 더 많은 숱을 가지고 있지만, 등골이 서늘했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원래 머리숱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는데 30대 중반에 생활 습관이 불규칙하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그 당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새벽에 출근해서(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 10시 넘어 퇴근하기를 밥먹듯이 했다. 그것만 해도 문제인데, 하루종일 끼니답지도 않은 것들을 먹다가 밤이 되면 술로 배를 채우곤 했다.(술도 잘 못마시는데!) 아마 X세대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맞죠?) 그러자 머리카락들이 이런 몸뚱아리에선 도저히 못살겠다며 내 두피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털님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도 아내가 낌새를 알아채고는 내 팔을 붙잡고 피부과로 향했다. 두피 검사차 검사 장비를 들이대니 화면에 벌겋게 일어난 두피와 불난 민둥산에 듬성듬성 심어놓은 것 같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머리카락이 솟아나온 구멍에는 하얀 무언가가 끼어있었다. 내가 봐도 더러웠다.
“약도 드셔야 하고~~ 두피 쏼라쏼라 관리도 정기적으로 받으셔야 하고~~”
나는 위기감에 하마터면 12개월 할부를 알아볼 뻔 했다. 아내는 진료비와 처방전 값만 계산하고 병원을 나왔다.
아내는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준비했다는듯 또다시 내 팔을 붙잡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두피를 비옥하게 만들어준다는 탈모 샴푸 매장으로 가더니, 자기가 미리 봐뒀다며 몇가지 제품을 담고 계산했다. 병원과 백화점에서 생각보다 많은 돈이 나와 구시렁댔지만, 그래도 더이상 나의 털님들이 도망가는 것을 방치할 순 없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열심히 관리하며 산 덕에 적당한 개수의 모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머리도 하루 두 번씩 꼭 감고(휴일엔 가끔 한 번만 감는 경우도 있지만 평일엔 최소 두 번 이상 감는다.) 샤워가 끝날 무렵엔 머리를 찬물로 식히고, 너무 피곤하지 않도록 잠을 잔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머머리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만약 아내가 증상을 조기발견하고 진도개 하나를 발동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되었을까.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는데 머리 어딘가가 허전하거나 유독 빛반사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 2030 젊은이들이여! 주저하지 말고 뭐라도 해라. 병원을 가던가, 약값이 비싸면 머리라도 깨끗이 감아 두피를 청결하게 해라. 귀찮다고 그냥 두면 안된다고 당부하고 싶다. 유전이신 분은 죄송합니다. 제가 뭣도 모르고 아는 척 했습니다. 60대 이상 형님들, 미안합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제는 받아들여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