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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선 Mar 08. 2024

또다시, 전주

집도 좋은데 여행도 좋아하는 번외 시리즈 : 전주 숲과 생활

  취향은 언제나 바뀌는 법이다. 나름 확고하고 고집스럽던 취향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영향, 또 어떠한 환경에 따라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뀌곤 한다. 분명 20대 초반에는 산보다 바다, 우디향보다 코튼향, 패딩보다 코트였다. 친구들에게도 말했듯이 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추워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다고 말했던 내가 이제는 정반대의 취향과 습관을 가지고 또 고집을 부린다.



  넓고 푸르른 바다를 그렇게 좋아했건만, 이제는 나무들이 빼곡히 우거진 숲 속이 좋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냘픈 풀잎들이 좋다. 재미가 없을 수 없는 화려한 도시, 서울보다 낮은 건물의 조금은 심심한듯한 조용한 전주를 더 좋아하게 된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전주에 동생을 꼭 데리고 가고 싶었다.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에 있는듯한 고요함이 참 좋았다. 전주는 내가 사는 대구에서 기차도 없이 차나 버스로만 3시간이 넘는다. 서울보다 먼 이곳이 나는 왜 이렇게 좋은지.




  이번 집 여행은 바로 전주의 숲과 생활이다. 이름과 같이 동화 속 집처럼 아름다운 숲이 펼쳐진 곳이다. 아늑한 분위기를 지닌 집도 집이지만 집 넘어 존재하는 작은 숲이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이다. 작은 공간 안에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그 정원, 나무들이 있고 풀과 꽃들이 있었다. 그리고 가을이 한창이기 때문에 싱그러운 풀잎의 내음보다 더 성숙해진 잎들의 향기가 가득했다. 마치 오래된 책의 냄새와 같달까. 나는 여전하게도 이곳에서 세상과 잠깐 이별하여 여행을 즐겼다.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해 먹으며 그렇게 보냈다. 아직도 이 여행법이 너무나 좋다.



  내 동생이 참으로 좋아했다. 나보다 더 소녀 같은 그녀. 꽃과 나무를 잘 보살필 줄 알고 아름답게 볼 줄 아는 그녀는 이 집에서 한참을 행복해했다. 나도 그런 그녀를 보면서 참 행복했다. 우리는 숲과 같은 정원이 너무 좋아 집보다 테라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숲이 아름다워 새들도 쉬어가는 이 집에서 갑자기 작은 새 한 마리가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놀란 나머지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니 그 새는 간신히 옅은 숨만 내쉬고 있었다. 동생은 너무 안타까웠는지 한참을 새 곁을 떠나지 못했다. 자그마한 새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자느니, 수의사에게 전화를 해보자느니, 온갖 방법들을 생각해 보며 그 새를 살리려고 했다. 나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 운명이니, 자연스럽게 보내주자"라며 체념하였다. 하지만 동생은 포기하지 않고 물을 떠 새에 부리에 가져다 댔다. 아! 정말 신기하게 작은 숨을 내뱉으며 그 물을 조금씩 받아먹고 있는 것이다. 한 30분이 넘었을까, 그 새는 기적같이 다시 훨훨 날아갔다. 나는 농담으로 흥부전 제비처럼 은혜 갚으러 올 거라고 말했다. 


  "이런 일도 다 있네, 참."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따스한 햇살, 무르익은 잎사귀들, 바삐 움직이는 꿀벌들, 그리고 작게 심어놓은 사과나무에 빨간 사과가 달려있었다. 역시나 아침이 가장 아름다운 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준비해 놓은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는 방법이 적혀있는 팸플릿을 한창을 읽어 내려갔다. 이 집에 대한 설명이 유독 마음에 쏙 든다. 그 설명의 마지막 문장은 '숲과 함께 잠들어요.'


  1박 2일임에도 짐이 가득 찬 큰 백팩을 이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쉬운 마음에 숙소 곁을 계속 서성이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는 잘 묵고 간다는 문자뿐, 나중에 이 집의 있던 부엌처럼 해놓고 살아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주의 생태하천으로 향했다. "날씨도 좋은데 걸어가자!" 덥지도 춥지도 않은 볕 좋은 가을날에 우리의 발걸음은 신이 난다. 나와 팔짱 끼기를 좋아하는 동생은 항상 나의 옆에 꼭 붙어서 "언니! 난 언니랑 여행하는 게 제일 재밌어!"라고 말한다. 장녀인 나는 그녀의 애교를 맞받아칠 용기가 없다. "나 없이 어떻게 살래"라고 한 마디 툭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벚꽃이 활짝 필 쯤에 또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p.s

  제가 애정하는 곳, 전주생태하천의 나무가 모두 벌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나무의 영양을 위해 몇 그루만 벌목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모두 벌목되었더라고요. 정말이지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어요. 흐르는 하천 사이에 존재하는 버드나무들의 움직임이 참으로 아름답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너머 있던 청연루의 모습과 생명력으로 가득 찬 이 하천이 얼마나 한국적인가를 느끼게 해 준 곳이었죠. 애정하는 장소의 변화로 전주에 다시 가게 된다면 얼마나 마음이 좋지 않을까요. 이 여행 때 필름 한 롤을 다 쓸 정도로 전주를 많이 담아서 다행입니다. 저의 사진으로 전주생태하천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함께 기억하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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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생활 숙소 정보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1길 95-18

@forest.w.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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