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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름 May 04. 2024

학교의 독특성- 주는 것

대학원 시절 교육학 수업을 들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학자별로 학교, 공교육의 목적을 그들의 관점으로 다 다르게 봤지만, 나에게 학교라는 곳은 본질부터가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곳처럼 느껴진다.

교육을 제공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수업 외 배움의 기회 또한 제공하는 곳.

그리고 주는 것에 대한 섬세함의 정도는 대상의 나이가 어려질수록 커지고 다양해진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의 경우 논문 지도, 수업을 제공하는 것 정도의 세심함이라면 유치원생의 경우 머리를 묶어주는 것, 막힌 코를 풀어주는 것 등 그 섬세함의 정도가 훨씬 커진다.

주는 사람의 개인적인 특성에 따라 대학원생들의 경우에도 그들의 생애주기에 맞는 보다 더 섬세한 것들을 받게 될 수 있지만, 성장과 성숙의 정도에 따라 필요로 하는 절대적인 섬세함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가 어릴수록 더 섬세한 케어를 받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학교도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섬세한 것들을 줘야 한다.

친구와의 관계는 잘 되고 있는지, 공부 습관은 잘 잡혀 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등.

모두 그들에게 필요하고, 케어해줘야 하는 것들이다.

물론 대학원생들이 주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더 섬세한 것들을 받게 되는 것처럼 중, 고등학생들도 주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결국엔 섬세히 주는 것은 받는 사람의 특성이 아닌 주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섬세함이란 결국 사랑과 관심인가?


너무도 감사하게 우리 학교는 섬세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들만이 모여있다.

그리고 그 섬세함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학생들에게만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러있는 모두에게 향해 나에게까지 온다.


더 한 팀이 되어 일하자는 의미를 담은 꽃다발, 어느 아침 내 자리에 놓여있는 필요했던 슬리퍼, 내 차를 빼기 편하게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다른 곳으로 이동되어 있는 이사님의 차.

그리고, 그 섬세함을 가득 머금고 자란 학생들의 건네는 비타민 음료와 캔디까지.

그렇게 나도 함께 섬세한 것을 주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섬세한 것을 주는 것이 학교의 독특성 때문이 아닌 주는 사람의 특성 때문이라면,

세상 모든 구석구석에 이 섬세함이 퍼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섬세함을 가득 머금고 자란 우리 학생들이 한몫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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