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된 이유
우리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급하고 나는 느리다. 그는 계획적인 반면 나는 조금은 즉흥적인 편이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족과 건강이 우선이라는 것 외에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듯하다. 심지어 우리는 개그 코드조차 다르다. 어쩌면 이리도 다른지.. 이렇게나 다른데 어떻게 그 당시에는 서로를 평생 함께할 사람이라 점찍었는지 이해가 도무지 안 된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고 우리가 가진 다른 점들은 서로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채워나가야 할 갭이 크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 둘이서 평생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든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하고 서로에게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와 그의 차이점들이 보이면 무척 못마땅했다. 더욱이 그와 내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면 나의 방식이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았다. (사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다. 이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럼 나는 아직도 나의 남편에 대해 불만이 많은가? 사실 이제 그렇지는 않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혼전문변호사가 하는 말에 나는 무척 공감했던 적이 있다. 부부사이에 다른 점을 고치려고 한다면 무척 힘들어질 거라는 말이었다. 배우자와 나의 다른 점들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지만 사실이었다. 그렇다. 사실 그는 나와 다른 사람이고 나의 배우자이기 이전에 독립적인 한 사람이다. 물론 배우자의 특징들을, 특히 그것이 나의 것과 정반대라면, 그냥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과신해서는 안된다. 그저 노력해야 함을 인지하고 기억해야 한다.
나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그가 나보다 잘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겠지만 그는 나만큼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보며 나도 노력한다.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 그랬던가. 나의 남편을 옆집 아저씨 보듯이 하면 된다고.. 그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네 참..”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돌아서야 한다. 그 부분을 내가 세상을 대하는 논리로 이해하려 하거나, 조금 더 개선시키려는 마음을 먹으면 앞으로 힘든 시간이 펼쳐진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와 그의 다른 점들을 우리가 채워나가야 하는 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다. 사실 내가 채워야 하는 것은 나와 세상 사이의 갭이다. 그리고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나의 배우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나와 다른 사람에게 끌린 것도 내가 못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나의 본능이 먼저 알아보았을 수도 있는 일이다. 생존을 위해 나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그를 내 가까이에 둔 것이다.
일례로 우리는 여행을 계획할 때 신속한 성격을 가진 그가 티켓팅과 숙소 예약 등을 재빠르게 처리한다. 그리고 느긋하지만 꼼꼼한 내가 여행의 세부적인 경로를 계획한다. 그럼 계획적인 남편은 내가 세운 일정을 군대 일과시간을 지키듯 착착 진행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여행은,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내가 미리 생각해 둔 플랜B를 제시한다. 남편은 플랜A는 해내지 못했지만 완수할 수 있는 플랜B가 있기에 안도한다. 조금은 즉흥적이기도 한 나는 이런 약간의 변화가 여행의 묘미라며 즐거워한다.
우리는 그렇게 혼자였다면 해내기 버겁고 무척 싫어했을 일들을 서로에게 조금씩 기대며 해나가고 있다. 나도 그 시간과 과정을 곁에서 함께 했기에 마치 내가 해낸 듯이 조금은 뿌듯하고 스스로 발전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서로의 다름을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 어쩌다 얻게 된 히어로 슈트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좀 나을까 싶다. 물론 그 슈트가 때로는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 덕분에 무언가를 해결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덕분에 더 잘해나갈 수 있었던 일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 한숨이 푹푹 나올 때도 많다. 그래도 그의 존재가 이제는 나에게 꼭 필요하고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평생 있을 거라는 것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