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럴듯하게 보이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많은 노력을 한다. 남자는 머리빨이라며 머리숱에 집착하거나, 자신을 돋보이게 해 줄 헤어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매만진다. 여자는 다양한 시술을 받기도 하고, 퍼스널컬러를 찾아 그에 맞는 화장품, 옷 등을 구매하기도 하며, 그 외에도 액세서리와 네일 관리 등으로 외모를 가꾼다. 꼭 이러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자신의 기준에 괜찮아 보이는 모습을 위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할 것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아줌마지만 밖에 나갈 땐 나름 최선을 다해 꾸안꾸를 추구한다. 남들에게는 그냥 안꾸로 보이는 것이 문제이지만..
나는 사실 멋진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왠지 부담스럽기도 하다. 물론 그들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아니기에 그냥 내 느낌일 뿐이다. 여하튼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왠지 말 걸기가 어렵고, 나의 표정과 몸짓, 말투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런데 가끔 이런 딴 세상 사람 같은 그들이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완벽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 허술함을 보일 때이다. 그런 허술함을 발견할 때면 내면의 벽이 허물어지고 나 또한 내가 숨겨둔 부족함을 내보여줄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남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에게서 허술함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지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남편은 꽤나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키가 크고 긴 다리도 가지고 있으며, 얼굴은 갸름하고 쌍꺼풀이 있는 예쁜 눈을 가졌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와 짙은 눈썹 덕분에 남자답게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의 외모를 보며 칭찬을 한다. 그러나 이런 외모는 안타깝게도 나의 이상형과는 정반대이다. 나의 이상형은 얼마 전 '서진이네'에 출연했던 최우식 님처럼 무쌍에 소년미와 장난기 있는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그만큼 잘난 외모를 가지진 않았지만 이상형은 누구나 있는 것 아닌가..하핫
그를 만나기 전 카톡 프로필 사진의 마초 같은 그의 진한 인상을 보며 나와는 너무 안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보기도 전에 기대치는 이미 무릎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자동차 옆에 말끔한 셔츠와 카디건을 입고 서있던 남자의 모습에서는 역시나 소년미와 장난기 따위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 모습에서는 약간 느끼함 마저 느껴졌다. 우리는 저녁 시간 이전에 만났기 때문에 차를 먼저 마시기로 했다. 그는 모르겠지만 나는 차를 마시고 별로면 저녁은 안 먹을 요량이었다. 자신이 잘 가는 카페가 있다며 데리고 간 곳은 누가 봐도 소개팅을 위해서 검색한 것 같은 곳이었다. 이렇게 작위적인 사람이라니 역시 나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로 들어가 주문을 하고 앉아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남편의 허술함이 보이고야 말았다.
첫 번째는 그의 웃음이었다. 생긴 것은 호탕한 남자처럼 생겨가지고 이야기를 하며 웃는 그의 표정과 웃음소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입은 좀처럼 활짝 웃지 못하고 웃지 않는 것과 웃는 것 사이에 머물러서 웃음소리만 "호허호.."라고 낼뿐이었다. 호도 아니고 허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서 소심하고 부자연스럽게 웃는 그의 표정은 누가 봐도 소개팅 자리에서 잔뜩 긴장한 사람의 것이었다. 여자들을 여럿 만나봤을 것 같은 외모로 그렇게 어색한 표정을 짓다니..
두 번째는 그 카페를 나설 때였다. 그는 문을 밀고 자신이 먼저 나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문에 등을 바짝 붙이고 서서 나를 먼저 내보내려고 어정쩡한 자세로 문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을 당겨서 잡아주고 나를 먼저 내보내던지 그게 안되어 밀었으면 나가서 붙잡고 있으면 될 것을… 문고리를 붙잡고 몸은 나에게 부딪히지 않기 위해 문에 바짝 붙어선 그 모습이란 지금 생각해도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 모습에 나는 마음을 열었다. 그가 남자다움을 내보이고자 하는 허술한 노력들이 내 눈에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이니 그저 웃음이 날 뿐이었다. 그러나 그 허술한 노력이 우습거나 지질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남자가 귀여우면 끝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나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허술함을 보이면 큰 일 날 것 같지만 때로는 그것이 좋은 아이스브레이커가 될 수 있다. 이유는 나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허술함을 하나, 둘 쯤은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직장 상사의 실수와 멋쩍은 웃음을 보며, 꾸벅꾸벅 조는 면접관을 볼 때, 돌부리에 걸려 뒤뚱거리는 멋진 이성을 보며 우리는 왠지 모를 미소를 띠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할 때 마음속에 잔뜩 부풀려졌던 경계의 벽을 무너뜨리기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우연히 그들과 다시 마주치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모두 부족함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들 모두 다른 이가 보이는 허술함에 마음이 놓이고, 그래서 솔직한 자신을 내보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허술함과 부족함 바로 그것이 우리가 가진 특별한 점이고, 그래서 그것을 각자의 매력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