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한 번쯤 연애하기 좋은 상대와 결혼하기 좋은 상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두 표현은 이상하다. 말 자체는 긍정의 표현이지만 들었을 때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너는 연애하기 좋은 상대야”라는 말을 들으면 재미있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말 같아 좋기도 하지만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말로 들려 왠지 씁쓸하다. 반대로 “너는 결혼하기 좋은 상대야”라는 말을 들으면 편안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는 것 같아 흐뭇하다가도 내가 다소 지루하고 흥미롭지 못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도 않다.
나는 후자의 얘기를 더 많이 들은 편이었다. 내가 봐도 나는 다이내믹하고 통통 튀는 매력 같은 것보다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면을 조금 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또 외모적으로도 나 스스로에게는 크게 문제가 된 적 없지만 이성에게 첫눈에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는 편은 아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게 타고난 것을 뭐 어찌할 것인가. 하핫)
얼마 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예전에 연인사이였던 유명 연예인 두 명이 함께 나온 영상을 봤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하던 중 타이밍이 좋아서 둘이 결혼을 했더라면 이혼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들의 연애시절을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라, 서로에게 멋진 사람이라 말하면서도 그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지지 못했을 거라 말하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 영상을 보며 나와 남편은 정반대의 얘기를 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우리는 만난 지 5개월 만에 결혼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시부모님께서 서둘러서였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했기에 우리가 순수하게 연애한 기간은 사실상 한 달도 안 되었을 것이다. 작년에 남편에게 물었었다. 우리가 연애를 1년쯤 했으면 어땠을 거 같냐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헤어졌을 것 같아.” 이유인즉슨 내가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남편에게 그 질문을 묻기 전부터 내가 갖고 있던 속마음을 남편이 그대로 말했기 때문이다.
어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연애를 아름답게 기억하지만 결혼을 하면 헤어졌을 거라 말하고, 우리는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연애를 조금더 했더라면 헤어졌을 거라 말한다. 이쯤 되니 결혼 상대와 연애 상대에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궁합이라는 것이 연애할 때와 결혼할 때 다를 수도 있는가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결혼보다는 연애까지만이 적당했을 때가 있고, 누군가도 나에게 결혼까지는 아니었던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것이 타이밍의 문제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과 적당한 시기에 만나 결혼까지 했더라면 지금만큼 괜찮게 살고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유튜브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타이밍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타이밍이 맞았더라도 결국 끝은 지금과 별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며 내가 갖고 있던 생각도 조금 흔들렸다. 타이밍만의 문제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연애 경험이 많지는 않다. 그러니 세상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모두 알 수 없고, 나의 흘러간 인연들에 대해서만 생각해 볼 뿐이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문득 그때는 왜 그 사람에게 멈추어 서지 못하고 흘러가 버린 건지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나의 경우 지나간 인연들이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고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생각하면 ‘그래서 힘들었을 거야’라고 떠오르는 면도 있지만 겪어본 것이 아니니 결과가 어땠을 거라 말할 수는 없다.
나와 남편에게는 연애를 위한 충분한 기간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어색할 때도 있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 기간에 설렘이 분명 있었지만 미래를 확신할 만큼 행복한 시간이 충분했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혼을 결심할 수 있는 어떤 면이 분명 있었다. 결혼을 하고나서부터는 삐그덕거리는 부분에 기름칠을 해주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무엇인가는 처음엔 설렘으로 시작하여 애증을 거치고 때로는 의무감이 되어 우리의 관계를 이어나가기도 한 것 같다. 또 그 무엇인가는 서로를 알아감에 따라 느꼈던 어떤 측은함 같은 것이었고, 어떨 때는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내며 쌓아갔던 전우애였으며, 또 친구 같은 웃음과 투닥거림으로 생겨난 우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 보니 한 가지 감정으로만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연애 궁합과 결혼 궁합이 따로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다만 나와 남편의 경우를 본다면 우리는 연애보다는 결혼을 빠르게 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 부부의 결혼궁합은 좋은가?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나는 이제 알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겪어낸 감정들이 결국 모두 사랑이었음을,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승화할 수 없었음을. 두 사람이 함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남편과 함께 쌓아간 그 시간 동안 나는 배웠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결국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기에 그가 내 인생의 소울메이트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