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갱년기가 찾아오자 인생에 대한 회한을 늘어놓으셨었다. 그중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내가 그때 참지 말았어야 했는데..”였다. 엄마는 마음이 울적하고,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후회되는 점들을 이야기하셨다. “그때 내가 싸우고 들이받고 그랬어야 돼. 할머니랑 살 때는 할머니가 싸우는 게 싫다고 해서 참고, 나와서는 너희들이 엄마 아빠 싸우는 거 볼까 봐 아빠 비위 맞추고! 내가 그때 참지 말았어야 했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아빠였다.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막냇동생만큼은 가르치자고, 또 어머니를 꼭 호강시켜 드리자고 마음먹었던 효자이자 좋은 형이었다. 그렇기에 결혼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등 떠밀려 나간 선자리에서 아빠는 엄마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엄마는 퇴근길마다 뒤따라오는 남자들을 물리쳐야 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렇다고 미모를 믿고 공주같이 대우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니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 했고, 시골에서 나고 자라 생활력이 강한 그녀였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했지만 그래도 늘 최선을 다했던 며느리였고, 남편을 도와 틈틈이 부업을 해가며 살림도 육아도 야무지게 해 나간 아내였다. 하지만 그녀에겐 열심히 살아왔던 아름다운 추억들보다 당시의 어려움들이 더 생생히 느껴졌다. 호르몬은 엄마의 삶에서 좋았던 기억보다는 한스러운 기억들만 끄집어내었다. 엄마가 젊은 시절 너무 고생하고 오래 참았던 탓일까. 한탄은 오래 지속되었고 결국 아빠와 엄마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듯이 밑바닥을 쳤다. (지금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계신답니다.^^)
그리고 그 시기쯤 결혼을 한 나는 결혼 전부터 이미 결심했다. 나는 싸울 것이라고. 참지 않고 싫은 것도, 좋은 것도 모두 말할 것이라 마음먹었다. 엄마 나이쯤 되었을 때 그녀처럼 한스러운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이 되기 싫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는 지난한 시간이 찾아왔다. 결혼 3개월 차, 여름이 되고 한창 놀러 다니며 신혼생활에 젖어 있어야 할 그때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소소한 이유들로 싸우기 시작하면 점점 크게 번졌다.
작은 다툼이 시작되고 날 선 말들을 주고받다 보면 결국 그 뿌리를 건드렸다. 나의 경우에는 남편과 나누는 대화와 공감의 부족, 그의 무딘 반응들이 그것이었다. 내가 말할 때 자꾸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남편, 다정다감한 표현이 없는 하루하루가 쌓여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남편의 말 한마디에,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해져 있었다. 남편의 경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내가,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내가 싫었다.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 등을 얘기할 때 공감을 해주다가도 그 사람이 그렇게 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자신의 부족함도 있었을 거라는 듯한 나의 말을 들으면 그 대화는 어김없이 싸움으로 번졌다.
결혼 전에 다짐한 대로 나는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쉽게 넘기는 법이 없었고,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오래 자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일주일이면 서너 번은 싸우며 잠들고, 어떤 날은 밤을 새우며 싸웠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물건에 화풀이를 해본 적도 있다. 장마철이 되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창문을 뒤흔들 때 우리 집 안에서도 벼락이 내리치고 있었다. 여름휴가를 가서도 좋은 숙소에서 밤새 싸웠다. 싸우는 것이 지겹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싸웠다.
어떤 날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 앉아 혼자 맥주를 들이키며 생각하기도 했다. 아이가 없을 때 빨리 정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요새 이혼은 큰 흠도 아닌데.. 나와 이렇게나 다른 사람과 평생 살 수 있을까. 결국 이러다 불행한 결혼 생활로 평생을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남편도 속상함에 베란다에 서서 혼자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저 사람에게도 이게 행복한 삶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낫지 않을까. 빗방울이 창문을 두들기고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며 나의 생각은 깊어졌다. 서두른 결혼을 탓해보기도 했다. 너무 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며 자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포기하며 살기는 싫었다. 싸우는 데까지 싸워서 나라는 사람을 알아주길 바랐고, 그가 바라는 것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다행인 것은 항상 우리는 결국 화해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화해를 하자며 대화를 하다가 또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날 혹은 그다음 날이 되면 둘 중 하나가 다가가 미안하다고 넌지시 말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나와는 다르지만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악의적인 마음으로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모르니까, 나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몰라서 그렇다는 것을.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것이 우리의 다툼을 멈춰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나에 대해 알리려고 싸웠다. 내가 그리고 그가 무엇을 싫어하고 그것이 왜 싫은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 지 서로에게 알려야 평생 살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해에는 모든 장소에서 어떤 때에라도 치열하게 싸웠다. 마치 짧았던 연애의 부족함을 채우기라도 하는 듯이 우리는 그렇게 지독한 신혼기간을 보냈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서는 그 치열한 시간 동안 싸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잘 살아보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거라 믿었다.
그렇게 싸웠음에도 다시 화해를 하고 서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그리고 지금 잘 지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절대 서로에게 평생 상처가 될만한 말과 행동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싸우더라도 사건과 문제를 가지고 싸우자, ‘너와 나’라는 존재 자체를 가지고 싸우지는 말자 했다. 물론 싸울 때는 마음속에서 그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화가 나고, 가슴을 할퀴는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꾸역꾸역 그 말들을 삼켜내고, 다른 말은 모두 뱉어도 그 말만은 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때 받은 상처를 잊지 못한다는 말은 서로에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준 그 상처를 지울 수 없음에 후회하고 가슴 아파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그때 그 다짐을 하고 잘 지켜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그때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뾰족한 말들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도 안 날 그 말들로 그때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팠다면 얼마나 후회했겠는가. 시간을 되돌릴 수도, 다치기 전의 마음으로 되돌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결혼 전부터 이미 싸우기로 마음먹은 나는 남편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참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덕분에 배운 점들도 많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싸우는 것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물론 그것도 힘들었지만) 그때는 남편을 미워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도 불행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때 미운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가끔 예뻐 보일 때도 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