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택시를 타기 전 어플로 기사님이 말을 자제해 주시길 부탁하는 기능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기사님이 이야기를 하시거나 말을 걸어주시면 즐겁게 대화에 응하는 편이다. 이유는 우리 아버지도 택시 운전을 하셔서 그분들의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알기에, 나의 아빠가 생각이 나서 택시에 타면 잠깐이지만 기사님의 말동무가 되어드리고픈 마음이 든다.
한 번은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의 거리를 가는 중이었다. 이번에 기사님도 손님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즐기시는 분인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기사님의 전문 분야인 운전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대통령도 못 따라올 것이기에 기사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듣고 있는 나까지도 기분이 좋아졌다.
기사님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고를 자주 내는 이유를 나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운전미숙이라는 대답을 드렸다. 그러자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빨리 갈 생각만 해. 항상 엑셀 밟을 준비만 하잖어. 브레이크 밟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여.”
아! 그렇구나. 우리의 발은 대부분 가속페달 쪽을 향하고 있었구나.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운전을 할 때에는 발이 브레이크 위에서 멈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구나. 고작 1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기사님과의 인연에서 나는 또 한 가지를 배웠다.
우리는 참 빠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빨리 가기에 여념이 없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앞에 끼어들지 못하게, 나를 추월하지 않게, 더해서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가려고 가속페달을 더 자주 밟는다. 심지어 출발을 하기도 전에 가속페달 밟을 준비를 하며 마음속으로 부릉부릉 거리고 있다.
수업 시간에는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먼저 대답해야 하고, 약국에서는 옆 사람보다 내가 먼저 처방전을 들이밀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새로 나온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얼리어답터가 되어야 하고, 직장에서는 나의 동기 중에 내가 가장 먼저 승진해야 하고, 동창들 사이에서는 가장 먼저 집을 마련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우리 일상에 원동력이 되며 필요할 땐 가속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힘을 추진력이라 부르고 분명 우리 삶 안에서 필요한 힘이다. 하지만 너무 가속에만 몰두하지 말자.
삶을 살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 잠깐의 멈춤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바로 그 순간에 재빨리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은 발을 브레이크 위에 두고 있던 사람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다 옆 사람의 어깨가 불쑥 나타날 때, 친구에게 어쭙잖은 조언을 하려다가, 나에게 번아웃이 감지될 때, 과도한 대출과 투자를 하기 직전 등. 멈출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은 미련 없이 재빠르게 자신이 하던 일에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사고를 면할 수 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고 해서 영영 멈추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잠시 멈추었다가 적당한 때에 나에게 초록색 불이 들어왔을 때 다시 출발한다.
나는 교사가 되기 전 과외를 했었다. 처음에는 용돈벌이로 하다가 점차 학생들이 많아지며 웬만한 직장인 월급만큼 벌게 되었다. 멈출 수 없었다. 조금 더 노력하고 나를 밀어붙이면 공부방이나 학원을 차려서 더 잘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보다 지금 들어오는 수입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지만 교사라는 꿈을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나를 외면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이 생활을 멈추고 꿈을 위해 도전할 것이라 생각했었고, 지금이 멈출 수 있는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멈추었다. 주위 사람들은 아까워했다. 지금 물이 들어오고 있는데 나는 노를 집어던지고 배에서 뛰쳐나오는 멍청이 같았다. 그래도 나는 멈추었다. 이런 시간을 내가 나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량진에 들어선 날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역할 그리고 그에 대한 의무감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동안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에서의 나를 멈추기로 했다. 다른 일들을 멈추자 공부의 즐거움이 보였다. 무언가를 새롭게 알아가고 깨닫는 과정에서 눈을 반짝이는 나에 대해 알아갔다.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다른 할 일들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나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것이 나에게 자유로움을 알게 해 주었다. 그 시간을 질주가 아니라 멈춤이라 생각해서였을까. 나는 즐길 수 있었고 좋은 결과까지 얻게 되었다.
만약 그 시기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해야 하는 교재연구나 새로운 교습법에 호기심을 가지기보다 그저 직장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자신을 위한 여행을 가야겠다는 누군가에게 잘 생각했다는 말 대신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빠르게 가야만 모든 일이 잘되고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는 가끔 멈추기도 또는 후진을 허용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자리를 찾을 수도 있고, 더 멋진 풍경을 볼 수도 있다. 그 풍경은 창밖에 있을 수도, 내 안에 있을 수도 있다. 그냥 빠르게 지나쳐버리기엔 이 세상은 그리고 나는 멋진 것들을 너무나 많이 품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