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전쟁, 나는 너무 비장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1~2주를 보내고 나온다. 간혹 낯선 환경에서 혼자 지내는 것보다 집이 주는 편안함이 더 좋아 집으로 바로 가는 경우도 보긴 했지만 신생아 관리와 엄마의 회복을 목적으로 조리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을 선택했다. 셋째를 출산하러 가던 길에는 산후조리원에 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솔직히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도 처음은 있었다.
산후조리원과의 첫 만남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병원 입원실에서 직원을 따라 올라가(병원과 조리원이 같은 건물이었습니다.) 갈아입을 옷을 받고 조리원 안내를 받은 후 내 방에 들어갔을 때의 아늑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적막함, 옷을 갈아입고 점심식사를 받아 방에서 혼자서 밥을 먹을 때의 고요함. 이런 느낌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러나 그 고요함과 적막함은 폭풍전야처럼 앞으로 다가올 전쟁이 얼마나 치열할지에 대한 예고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평화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산후조리원 생활은 내 예상과 달리 무척 바빴다. 되도록 누워서 안정을 취하고 싶었지만 1~2시간마다 전화벨이 울리면 수유를 하러 가야 했고, 수유 후에도 유축을 해야 했다. 좌욕을 해야 환부가 빨리 회복된다고 하니 하루에 두 번 좌욕을 해야 했고, 산후 요가, 모빌 만들기, 아기 목욕 수업 등의 조리원 내 프로그램이 하루에 적어도 하나씩은 있었다. 또 하루에 세끼 식사와 그 사이의 간식, 그리고 저녁 식사 후의 늦은 간식까지 먹고 자리에 누우면 하루를 몸조리하면서 보냈다기보다는, 잘 짜인 일정대로 몸조리라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본래 나는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나의 루틴이나 마음속에 세워둔 작은 계획들이 어그러지면 스트레스를 받는 면이 있다. 그런데 산후조리원 안에서는 그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 너무나 자주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수유콜이었다. 아기가 깨었으니 수유를 하러 오겠냐고 묻는 전화이다. 산모는 아기에게 초유가 얼마나 중요한 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 당연히 수유를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모유수유는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첫 출산이다 보니 멋모르고 최선만 다했던 것 같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즉각적으로 몸을 일으켜 수유실에 갔고 갈 때마다 유축도 열심히 했다. 밤에는 선생님들께 아기의 수유를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아파 어쩔 수 없이 새벽에 일어나 수유실로 갔다.
게다가 옆에서 넘쳐나는 모유를 유축하고, 꿀떡거리며 젖을 먹는 아기의 엄마들을 보며 나도 그들처럼 될 것이라 다짐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 훈련소에 온 듯이 영양소를 축적하기 위해 골고루 먹고 미역국을 거르지 않았으며, 수유와 유축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나의 모유는 그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려고 노력했다. 열정적으로 밤이고 낮이고 쪽잠을 자며 계속해서 수유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또 중요한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위치 선정이다. 내 방은 신생아실 바로 앞 편에 위치했었는데 처음엔 수유실에 가까워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나의 휴식을 방해했다. 심지어 다른 아기들과 달리 중저음으로 울었던 첫째의 울음소리는 울 때마다 그 소리가 내 귀에 꽂혔고 10초 이내로 어김없이 내 방 전화벨이 울렸다.
나흘쯤 되었을 때 다른 아기의 울음소리까지 구분할 정도로 예민해진 나는 수유전쟁에서 최전방에 서 있었지만 갑옷도, 무기도 없이 견뎌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맨몸으로 그 치열함을 느끼고 있어서일까 피곤한 몸과 달리 나의 정신은 상시 각성 상태였고, 어느 순간 낮잠에 스르르 빠지는가 싶다가도 전화벨이 울릴까 싶어 정신이 번쩍 드는 나는 마치 급습하는 적군을 경계하며 깊이 잠들지 못하는 병사 같았다. 어떨 때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전화벨이 울릴 때면 내 심장은 포탄이 되어 가슴 저 아래로 쿵! 떨어지고 내 가슴은 철렁거리며 요동을 쳤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모든 것이 싫어져 거의 매일 같이 오시는 양가 부모님의 면회도 거절했다. 수유 전쟁에서 백기를 들고 조리원에서 맨 몸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 나는 정신을 다잡았다. 비싼 돈을 내고 여기서 왜 벌을 받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이 전쟁은 내가 만들어냈고 스스로 종결시켜야 했다. 평소답지 않게 불안하고 지나치게 예민한 나를 객관적으로 봐야 했다. 이러다 산후우울증이 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조용히 방에 누워 내가 왜 이럴까 생각했다.
생각 끝에 내가 너무 비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잘 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산후조리원이라는 이 세계에서 모든 것에 통달한 후 훌륭한 엄마가 되어 집으로 하산할 것이라는 환상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에 품은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포기해야 했다. 힘들면 못하겠다고 말해도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시간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충분히 주어질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했다.
나는 비장함을 버리고 부족한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수유콜에서 자유로워져야 했다. 그 수유콜을 한 번씩, 힘들면 두 번도 거르기로 했다. 그러자 나에게는 서너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아기도 빨기가 보다 수월한 젖병으로 먹으면 더 잘 먹고 배가 든든해서 더 오래 잠을 잤다. 나도 그 시간에 마음 놓고 한숨 푹 잘 수 있었다.
조리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피로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 시간에 방에서 혼자 TV를 보며 편안히 누워있거나 낮잠을 잤다.
조금 게으른 엄마가 되고 나니 치열한 전쟁은 사라졌고, 그제야 산후조리원이라는 곳은 말 그대로 몸조리를 하는 휴식 공간이 되었다. 수유실에서 아기를 만날 때도 힘든 표정이 아닌 환한 미소로 대할 수 있었고, 멍하니 허공을 보며 수유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기의 얼굴이며 손과 발까지 더 살펴보는 여유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방학을 알차게 꾸리고 싶은 마음에 또 마음이 엄숙해지려고 한다. 여유로움을 잃지 말고 아이들을 더 살펴보는 시간을 갖자고 다짐한다. 너무 비장했기에 조리원을 전쟁터로 만들었던 그때의 나를 상기시키며, 우리 집을 전쟁터로 만들지 않기 위해 자꾸 비장해지려는 지금의 나를 달랜다.
아이들과 함께 동그라미 안에 방학계획표를 짜며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계획표는 아이들에게 계획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함께 목표를 정하는 과정이지 반드시 이대로 실행하겠다는 서약서가 아니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말자.’
나는 단숨에 어떤 분야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느린 사람이다.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지만 내 능력과 주변 상황을 현실적으로 파악하여 가능한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
제 풀에 지쳐 쓰러지지 않고 꾸준히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멀리 바라보며 천천히 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다. 힘들면 쉬어가자고 말할 수 있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모든 시간은 분명 우리를 성장시키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오래 걸리더라도 우리가 잊지만 않는다면 목적지는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려 줄 것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