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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Dec 01. 2023

이름 없는 시간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12 60분이야.” 12시 60분이라니... 정각이 되는 분침이 가리키는 그때를 우리는 몇 분이라 칭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12 60분이라고 또는 12 0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1분과 59분은 있지만  사이의 정각이 되는 그 시각에는 분을 붙이지 않는다. 아이에게 정각이라는 시간에는 분을 붙이지 않는다고 설명하는데 어른인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라는 것을 알지만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이가 가지는 의아함을 이해할 것도 같다. 분침이 가리키는 모든 칸에는 이름이 있는데 그 칸에만 이름이 없다니 이상할 만도 하다.




  문득 정각이라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쩌면 그 시간은 우리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인 듯하다. 몇 시 정각에 만날 약속, 완성할 것, 발표할 결과 또는 자정이 되면 맞이할 생일날, 새해 아침, 그 밖에도 중요하다 여겨지는 무수한 날들... 그 모든 중요한 순간들에 이 시간이 함께 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순간들이 그 시간에 닿아 있기도 하다. 완성이라 불리지만 결국 그동안의 시간들과 헤어져야 할 때, 기쁨 대신 좌절의 순간, 그리고 문득 나의 지난날들을 바라보게 되는 나이를 맞이하는 날. 이 모든 아쉬움과 슬픔을 가져오는 시간도 이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60분이라 불릴 수도, 0분이라 불릴 수도 있는 그 시간. 끝 또는 시작이라 둘 모두로 생각될 수 있는 시점. 어쩌면 이 시간은 이름이 두 개여서 그중 무언가 하나로만 불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둘은 어느 것 하나를 골라 더 가벼이 여길 수 없을 만큼 모두 소중한 것이기에.


  그 이름 모를 수많은 순간들이 지나갈 때 우리는 많은 것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한 그때도 이 시간은 끊임없이 끝과 시작을 맞이하며 우리를 스쳐간다. 끝과 시작이 한 점에 있어 경계를 나눌 수 없는 그 시간처럼 내 앞에도 하나의 끝과 시작이 항상 함께 놓여있다. 마침표와 다음 문장 사이의 띄어쓰기 한 칸에, 식사 후 내려놓는 수저 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가 겹쳐지는 그때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결심을 하는 사이의 큰 한숨 속에... 그 모든 곳에 생각, 행동, 마음이 끝나고 시작됨이 반복된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끝과 시작을 나누지도, 그 모든 세세한 시간들에 의미를 깊이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짓지 않는다. 마치 60분 또는 0분처럼 그 순간들은 늘 그곳에 있고 나는 길을 건너듯 그곳을 매번 지나쳐간다. 


  어쩌면 그래서 그 순간들이 더 그리울 지도 모른다. 이름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렸기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그때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향수에 젖는다. 그 끝과 시작이 어디쯤인지 모를 그 연속된 시간들에 대해 어쩌면 잘 몰라서 그래서 더 보고 싶고, 더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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