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레니 Dec 20. 2023

결혼까지 걸리는 시간


  나는 남편과 5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 결심이 아니고 결혼식을 올리는 데까지 5개월 걸린 것이다. 심지어 흔히들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만남도 아니었고, 부모님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즉 연인이 되기 전에 친구 같은 사이도 아니었다. 내가 한 결정을 가지고 이렇게 놀라운 일인 듯이 말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나에겐 정말 놀라운 일이어서이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임신이라도 한 걸로 추측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럴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요새는 혼수로 해간다며 부끄러워 말라고 하니 아기가 열 달 안에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긴 겨울방학을 시작한 12월에만 해도 남자친구가 없던 사람이 3월 개학이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첩장을 주니 나라도 그런 생각을 했겠다 싶다. 청첩장을 돌릴 때마다 사람들은 나에게서 청첩장은 받지도 않고 동그란 눈으로 내 얼굴을 보며 몇 번이나 진짜냐고 되물었다.


  나도 내가 미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음에 드는 옷 하나를 봐도 가격이 얼마이든지 간에 장바구니에서 무조건 1주일 이상 묵힌다. 어떨 때는 고민하다 계절이 바뀌어버려 그다음 해의 그 계절이 돌아오고 나서야 산 적도 있다. 나에게서 서두름을 느끼는 순간은 별로 없다. 어릴 때도 느려터진 나를 보며 부모님은 나를 일어나게 하려면 엉덩이에 대포를 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일생일대의 중대한 사건, 결혼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빠르게 끝내버렸다. 결정은 사실 한 달하고 보름 정도 걸렸다. 남편을 열렬히 사랑해서 미친 것도 아니었다. 그럼 왜?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남편이 서둘렀다. 연애도 별로 해 본 경험이 없는 남편이 결혼을 서둘러서 결정하고 나에게 무작정 결혼하자고 말해버렸다.


  그럼 나는  한다고 했나. 그때의 나는  번의 연애를 통해 나에 대해 배우고 나니 이제는 선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할  있을  같다고  말했다. 당시에 며느리로서 꽤나 인기 있는 직업인 교사가 되었기에 남자를 골라서 결혼할  있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친정의 복잡한 가정사와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을 따져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남자뿐만 아니라 시댁 식구들도 만나야 했다. 그런데 남편도 시부모님도 나의 사정을 들었지만 이런저런 것들은 캐묻지 않았다. (모르는 사이 남편이  대신 부모님께 대답해야 했을 수도 있지만..) 대신에 처음 보던  어머님은 무척이나 밝은 미소로 반갑게 나를 맞아 주셨다. 그때 나는 나의 상황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결혼생활을 시작할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같다. 


  시부모님께서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나를 소개받으신 것 같다. 그런데 좀처럼 연애도 하지 않는 아들이 두 번의 만남 만에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자 세 사람은 얼굴만 맞대면 내 얘기를 했었다고 한다. 우리 집 사정은 달랐다. 엄마는 친구의 지인분 아들이라며 친구 사귄다 생각하고 편하게 만나보라는 가벼운 제안을 했다. 나는 일을 하다가 시험 준비를 하게 되어 초임교사라고는 해도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임용이 된 후 이제 한 학기 근무를 마친 시기였기에 결혼은 생각도 안 했다. 새로운 경험들에 더 집중하고 배울 것이 많았다. 연애를 하면 적어도 1년은 지나서 결혼할 것이라 계획했다. 결혼을 그렇게 빨리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결혼 준비를 하기 시작하며 엄마와 나는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만 해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만큼 나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을 했다. 흔히들 말하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결혼을 후딱 해치웠다. 저런 말이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적용되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분명 그때의 나는 정말 잠시 다른 사람이 되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남편은 무척 정말 많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척 느린 사람이다. 이것부터가 우리에겐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이 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의 결혼도 처음부터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되었구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시생 남편과 살아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