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안마시술 외 기타 자극 요법 도구로 사용하는 침의 최대치 허용범위이다.
인류가 침을 사용한 것은 아주 오래전인 석기시대부터로 추정한다. 돌이나 뼈를 갈아서 송곳이나 쐐기 모양으로 만든 폄석(피부를 자극하거나 얕게 찔러 피를 내거나 고름을 짜는데 쓰임) 등의 형태로 사람이나 가축의 질병을 치료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오랜 세월동안침을 사용하는 방법이 더욱 정교하고 다양해지며 길이와 굵기에 따라 대략 9종류로 분류하였는데 고대 동양인들이 9라는 숫자를 가장 크로 완벽한 숫자로 생각한데 따른다는 의견이 있다.
이전에는 '촌, 푼, 치' 등의 단위로 침의 크기를 구분하였고, 가장 긴 장침과 가장 두꺼운 대침도 많이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1호부터 10호까지 '호(毫 머리카락과 닮았다 하여 머리카락 호자를 쓴다)침'으로 그 크기와 굵기를 구별하며 이전보다 길이와 굵기가 훨씬 가볍고 얇은 2~4호의 침을 이용하는 것이 추세이다.
우리나라의 합법적인 침 사용자는 한의사, 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의 학생(지도교수의 감독을 받는 경우에 한정), 일제강점기 심사 자격을 취득한 극소수의 생존자, 국가 공인 안마사 자격을 가진 맹인(3호 이하의 침을 안마 보조 요법으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맹인은 언제부터 침을 사용하였을까?
시간을 거슬러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시각장애인은 나라에서 직업을 알선하여 그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나름의 복지제도인 것이다.
이때 그들이 주로 해왔던 일은 점복업(점을 치는 일), 관현악, 침술(침구)이나 안마였으니 현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쓰이는 소경과 봉사라는 단어는 고려시대에선 '소경', 조선시대에선 '봉사' 또는 '참봉'이라는 말직의 관직명이 유래가 된 것으로 조선시대의 맹인은 천인 신분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관직을 얻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다 아는 허준은 시각장애인은 아니지만 그의 첫 관직도 봉사였다.
그 후 시대가 바뀌며 1913년 경성제생원(국립서울맹학교 전신)에서 시각장애인의 직업교육으로 안마사, 침사, 구사(뜸)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듬해인 1914년 10월 조선총독부 경령 10호를 통해 안마면허증, 침사면허증, 구사면허증 제도가 신설되었다. 이후 평양, 해주, 원산, 인천 등의 타지역에서도 지방장관이 실시하는 침, 구, 안마사자격고시에 합격한 맹인에게 면허증을 발급했고, 해방기까지 약 800여 명이 면허를 취득하여 병원에 취업한 경우도 있고, 안마원을 개설하거나 다른 선회적인 형태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미 군정청에 의해 동양의학의 면허제도가 폐지되는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구사, 침사 면허제도가 잠깐 폐지되었지만 서울맹학교에서는 관련 교육을 계속적으로 이어나간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회장 김명도를 중심으로 17명의 안마사들이 안마업 재건에 나서자 전국시각장애인들도 강력하게 요구하며 1960년 유사의료업자에 대한 면허교부와 고시절차가 마련되고, 1973년 보건사회부령에서 '안마사는 안마, 마사지 또는 지압에 의한 전기기구의 사용, 기타의 자극방법(침시술)에 의하여 인체에 대한 물리적 시술행위를 하는 것을 업무로 한다"라고 규정하게 되었다.
또한 안마사의 자격을 '교육법에 의한 특수학교에서 물리적 시술에 관한 고등학교과정을 이수한 맹인 또는 중학교과정 이상의 교육을 받은 실명자로서 보건사회부 장관이 지정하는 안마수련기관에서 2년 이상의 안마수련과정을 이수한 자'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침을 잘 놓는다는 소문이 나서 손님이라도 많아지면 인근 한의원에서 걸핏하면 고소를 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불려 다녀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결국 1988년 2월 8일 보건사회부의 유권해석을 통해 '교육을 받은 안마사의 3 호침(침의 지름이 0.25~0.20 이하) 이하의 침 시술을 허용한다'는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그 후로도 계속적인 대립이 생겨나자 1995년 국민고충 94호를 통해 교육을 받은 안마사의 침 시술권을 허용한다는 사실을 명문화하도록 한다.
하지만 각자의 생존권이 걸려있는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계속되는 첨예한 대립과 한의사의 물리적 규제로 법정에 서게 되는 시각장애인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준으로 보았을때 전문자격이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침으로 시술하여 여러 병폐가 나타난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어쩌면 그것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이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이다.
급기야 2011년 시각장애인을 상대로 제기된 행정심판에서 안마사의 3호 침 이하의 침 사용을 허용한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들어 승소하는 판례가 있기도 했지만 이후 다른 사건에서는판사의 재량과 상황에 따라 유죄를 인정받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상대의 기소포기를 바라거나 '증거불충분에 의한 무혐의 처분'을 받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한방으로 오해할 만한 용어를 언급해서는 안되며 '환자'는 '피시술자', '치료'나 '진료'는 '시술'로 표현해야 한다.
자칫 '환자, 치료, 클리닉'이라는 단어를 공공연하게 사용하다가는 한의사뿐만 아니라 양의사에 의해서도 법정에 서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침은 진료비를 받는 영리의 목적이 아닌 안마시술을 하면서 안마보조자극요법 중 하나로 사용해야 하며 언어적으로도 그렇게 표현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의 남편 또한 침시술만으로 영리를 취한 일이 결단코 없다.
지인이나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 교회를 찾아다니며 봉사하는 목적으로만 이용하며 그야말로 안마시술에 필요한 상황일 때 침시술을 곁들인다. 더군다나 남편은 한의학에 의한 경혈 자극에 의한 시술을 하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하니 가뜩이나 심리적으로 위축된 삶을 사는 시각장애인들은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현업에 종사한다.
일부 한의사는 시각장애인이 그만한 실력도 없으면서 무분별하게 침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하지만 서울맹학교에서는 안마사 교육을 위해 해부, 생리, 한방, 골격, 근육, 임상, 경혈 등 10과목에 대한 정규수업을약 2500시간 동안 받고 이외 방과 후 수업과 야간특강, 실기 시간을 통해 교육하고 있다. 한의사가 직접 검수하고 교육부에서 정식으로 허가한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기에 한의사라고 해서 모두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각장애인이라고 모두 실력이 좋고 나쁨도 없다.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연구 결과이며 수없는 임상의 결과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주위에도 한의원이 있지만 그곳에서 침을 맞아도 도통 낫지 않아 남편에게 와서 침을 맞고 나아서 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고, 어느 한의원에서는 오랜 단골의 불치병증인 환부가 많이 좋아져서 어디서 어떤 치료를 받아서 그러냐기에 우리 안마원 이야기를 하니오히려 그곳에서 치료되지 않을만한 손님들을 우리 안마원에 보내주기도 했다.
아래는 피부 전체에 선천성 아토피 질환을 앓고 있는 남학생에게 침시술을 해 주었을 때 세 번만에 나타난 효과를 비롯 해 그 후 상황을 학생의 어머님이 사진으로 찍어 남편에게 직접 전송해 준 것이다.
물론 마지막엔 땀이 나지 않던 발가락과 손가락 사이에서도 땀이 나기 시작했고, 아토피 증상이 없어져 너무도 감사해 하셨다.
그 당시 남편은 아토피에 대한 침시술에 대해 한참 연구하는 중이어서 임상자가 필요했기에 무료로 시술을 한 것이고 그에 대한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났지만 괜한 시비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우리는 이에 대한 홍보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것뿐인가...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만 치료되겠다는 병증도, 수십년을 고민하고 앓던 병증도 낫게 한 사례가 수백건이다.
그러니 무조건적인 반대의 입장을 펴거나 유권해석을 이유로 고발과 송사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할 부분은 존중하며 상생과 공생의 길을 걸으면 안 되는 것일까?
사진은 1호침이다. 이렇게 정교한 침을 놓으려면 내공이 필요하다. 침관도 직접 주문제작해서 까다롭게 고른다.
내가 3호 침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남편은 주저하며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 했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기에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이 3호 침을 사용해서 이런저런 효과가 있다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3호 침의 허용은 시각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함과 동시에 '유권해석'이란 단서를 달아 그들을 옭아매는 제도적 올가미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법의 형태에 대해 항변하고 싶다는 말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자기가 겨우 얻은 밥그릇이라도 놓칠세라 3호 침 이상의 침을 사용하여 상대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시비를 걸어올 때는 무슨 침을 사용해서 법규를 어겼다고 말하지 않고 한의사의 전유물인 '침'자체를 이용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 논지이기 때문이다.
3호 침의 유권해석 법령은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인을 보호하는 제도처럼 보이지만 '너희는 여기까지만 허락해 주겠어... 대신 이 선을 넘어오면 절대 안돼!!! 그나마도 내가 기분 나쁠 때는 내가 허락한 그것마저도 뺏을테니 그렇게 알아!!!"라고 말하는 듯 하다.
마치 같은 반의 힘센 학생이 약한 학생을 다른 학생들로부터 지켜주는 대신 조건을 내걸며 자신의 비위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영 별로다.
현재까지 합헌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사업도 이제는 허울뿐, 정안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테라피, 카이로프락틱, 스포츠 안마가 대부분이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갈 곳 없는 그들이 수급권자로 전락하는 것을 보며 세상은 이야기 한다.
"우리가 일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돈을 주잖아... 뭐하러 힘들게 안 보이는 눈으로 일을 하려고 해! 그런 일은 우리가 할 테니까 너희들은 우리가 보호해 주는 테두리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
요즘 젊은 시각장애인들은 실제로 저러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안마를 한다고 해도 안마원을 개설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대기업 내에 있는 헬스키퍼(기업 내에 직원 복리후생으로 안마사를 고용하여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안마를 받도록 서비스 하는 것을 말한다)에서 몇시간 적당히 일하거나 수급자로 생활하려 하기에 요즘은 안마사를 구하는게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워졌다.
당연히 침시술을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안마 실력이 늘지 않는다. 절박하게 투쟁하며 밥그릇을 지키려는 치열함도 젊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장애인은 장애인답게 기득권은 기득권답게 비장애인은 비장애인답게 살도록 시대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출발점이 다른 이들에게 제도적으로 온전한 권리를 주는 것은 너무도 무리한 일일까?
내가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장애인에게 동정을 주는 대신 조금의 도움으로 비장애인과동행하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일까?
오늘도 기울어진 운동장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시각장애인들....
그나마도 떨어질까 두려워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꼿꼿이 힘을 주고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살이가 여간 힘겨워보이는게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반대편에 많은 이들이 함께 해 주어 조금은 더 평평해진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길 소망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