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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al Song Jan 05. 2016

Oneal의 클래식 정복기-시즌 2

플루트

송구영신(낡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는다)이라고 한다. 낡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 한다.  보냄과 맞음을 위해 12월 31일 다양한 것들을 한다.

송년음악회도 하고 재야 음악회도 한다.

문제는 이 '새로운 것'에 딱히 설레거나 정서적 특이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드렁하다.

 뭐 새로운 것이 있겠나, 이런 맘. 이게 다다.


새로운 물건을 하나 샀다. 노트북 거치대다.

용도는 서서 일하는 책상. 앉아서 일하는 것 보다 건강에도 좋고 앉아서 일이 안 될  때 일의 효율을 높이는데 좋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서서책상을 주문하려다 가격에 맞는 것을 찾다 보니 노트북 거치대를 서서 책상 용도로 구입했다.

새 물건을 사서 쓰는 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높이를 자유롭게 조절하게 만든 이 노트북 거치대를 내가 원하는 높이로 조절하는 것에 애를 먹었다.

책상에  올려놓으면 내가 서서 일하는 높이에 맞추고 잠자리에는 내가 누운 높이에 맞추고 용도에 따라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는 설명서는 읽어도 읽어도 실제로 할  때는 무용지물. 거치대 다리 올렸다 내렸다가 이렇게 어렵나 하는 한탄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 아침이 송구영신 어쩌구 하면서 12월 31일을 보내고 난 다음 날 1월 1일 그 아침이었다.

새 물건과 새 용도와 새 것에 몸을 맞추고 맘을 들이고 적응하기가 벌써 버거워진 나이가 된 것인지, 새 것에 잘 적응이 안된다. 새로움이 별로 다. 그래서인지 새해라는 것에도 그냥 별로다.

낯설지 않고 새롭지 않다 뭐 든지.  설렘이 일어나는 대상이 없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반응도 활발하지 않다.

아침부터 짜증이다. 아침부터 짜증을 낼 일 인가, 그것도 새 해고 1월 1일 첫 새해를 짜증으로 시작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짜증이 덧붙여졌다. 그리고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나는 것이지 아침이네 1월  1일이네 새해네 하는 이딴 의미부여도  더 짜증을 증폭시킨다.

이런 의미부여가 싫다.

새해, 새 날, 새로운 시작. 이런 것 말이다.


설렘을 일으키는 것의 소멸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나의 내재적 자세에 이미 뭔가 특별한 날, 특별한 시간인 것 마냥 신나 하고  좋아하고, 그런 것 있잖나? 좋은 척 신나는  척하는 것이 별로다.


"솔직히 너, 별로야."


그저 하루다.

내일 죽지 않으면 산 어제와 이어지는 산 오늘 산 내일의 전 날이 될 하루.

내일  죽을지 모르니 오늘이 특별하다 우긴다면, 특별하게 여긴다고  실제로 변화해서  특별하게 되는 것은 아닌데, 행복한 착각이 든다면야 그러시든지.

그러나 죽음은 도처에 다반사. 버려진  흙더미처럼 많으니 그것도 뭐 흔하지만 특별함의 부여가 '위로'가 된다면.

'위로'가 사는 유일한 에너지가 된다면, 그 에너지라도 있어야 만 하루가 견디어진다면.그러시든지.

시간이 불변하는 위대한 법칙이라면, 그  시간이 영원한 것이라면, 나도 시간이 특별하겠지만. 시간은 그저 우리가 필요해서 재단해 놓은 맞춤복.


오늘은 그저 오늘.


중요한 것은 지금 배가 고프다는 것.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한다는 것. 배에 넣을 '무엇'을 얻기 위해 어제까지 나는 노동을 했다는 것.  먹고살아야만 해서 나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해야 만 한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전부.

먹는 것이 중요해와 먹는 것 만이 중요해 사이의 줄타기.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솔로 주자의 아슬아슬 줄타기 같은 기분. 나만을  생각할 것인가 나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하는 가 사이. 그래도 나,  먹는 것이 중요하다.

먹고살기 위해 '노동'은 가치 있다. 그 노동이 나에게 생존에 필요한 '물질',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전부, 그 뿐이라도 노동은 가치 있다.  노동에서 먹을 것 말고 즐거움과 기쁨마저 얻겠다면 그것은 욕심이다.

새해,  의미부여한다면 , 난 내일도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노동'하러 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여야 할 오늘이고, 이렇게 앞으로 1년도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

먹고살기 위해 올 해도 '노동'해야 한다.


12월 30일 송년음악회를 했다.12월 30일까지 바쁘고 31일도 6시까지 일했다.

그리고 퇴근 후 관객으로 변신해서 재야 음악회를 보러 갔다.


공연은 하는 것 보다  보는 것이 좋을 까?


노동의 끝에 얻은 여유. 재야 음악회.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연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클래식과 함께 하는 연말. 한 해의 마지막을 클래식 공연과 함께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뭐 그래도 설렘은 없지.


이번 공연의 노획물은 '플루트'다.

낯선 것.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악기는 뭐가 있을 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등.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솔로 악기로 플루트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유명한 플루이스트라는 말을 귀동냥하고 기대감도 조금 맘에 품고 만난 새로움과의 조우.


"나는 솔직히 클라리넷이 좋은데"


나는  피아노보다는 현악기가 현 보다는 관악기 좋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관악기는 클라리넷.

이유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미치게 좋아하기 때문.

그래도 플루트도 관악기니까.


여기까지 글을 쓰고 관악기를 검색해 봤다. 나는 관악기를 구분하는 가?라는 질문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구분법은 의외로 간단.

옆으로 불면 풀루트 되겠다. 앞으로 불고  검은색 계열인데 입 쪽 가까이에 빨대가 붙어 있으면 오보에,  빨대가 없고 뭉툭(리드)하면 클라리넷, 몸통 옆으로 큰 빨대 거의 대롱이 붙여 있으면 바순 이렇게  이해하면 간단하다.


플루트의 오케스트라 협연은 음반으로도 잘 안 들었고 공연도 처음으로 만난다.

기대가 높다. 플루트를 부는 사람 되게 유명하다는 팜플렛 정보를 읽었다.


공연을 보고 집으로 오면서 그 플로트 연주를 생각한다.(이 문장에는 배철수 DJ 의 멘트 말투가 섞여 있다.)


그 플루트의 연주가 끝난 순간.

사람들의 환호, '부라보'를 외치는 함성 소리, 미친 듯이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모습들. 무섭다. 이들이 열광이 무섭다.

맘 속으로 속삭인다.


"클래식 듣는 귀가 나빠서, 내 귀는 썩은 귀"

나는 별로였다.


"그 연주 별로인데"

말을 못 했다.


이 괴리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클래식이라는 넓고 깊은 바다 외로이 떠 있는 작은 배에 타고 있는 이 가련한 '오디세우스'의 후예는 깊게 한 숨을 내쉰다.


"이 썩은 귀를 어쩌지, 어쩌지 이 썩은 귀"


사람들의 앙코르 소리. 플루트 연주자가 화답으로 앙코르를 한다. 앙코르의 답례 곡은 '대단한 기차 여행'.

열광의 박수에 대한 답례로 기차 소리를 들었다. 연주자는 추신수 팬인가 보다.


집으로 돌아와 그 사람을 20세기 10명의 플로이스트로  뽑았다는 잡지를 검새해 본다.  거기에 나오는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는다.


그 플루트가 정말 잘 하는 것인지 아닌지,아니다, 내 귀가 썩은 것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플루트를 열심히 듣는다.


플루트의 낯선 악기가 나에게 새로움을 줄는 지, 살짝 기대, 기대 같은 것 별로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가 이 글 별로다라고 생각하겠다. )


Jeanne Baxtresser, J. S. Bach - Sonata for Flute No. 1 Largo e dolce


https://www.youtube.com/watch?v=UxQweA8E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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