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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al Song Jan 15. 2020

무학의 놀이터

Books: 잔을 부딪치는 것이 도움이 될 거야 1.

시인에게서 시집을 선물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스타 뮤지션 사인 시디를 받는 것 같이 행복한 일입니다. 아니, 그 보다는 더, 축구 스타가 경기에 입고 뛴 저지를 받는 것 같이 흥분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본인의 자작 시집은 아니죠. 자신의 시집이 아닌 시집을 주는 것, 이것은 왠지 겸손한 시인의 미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시집 제목은 "잔을 부딪치는 것이 도움이 될 거야" 여러 시들을 모은 묵음 시집이었습니다.

 다양한 시가 들어있는 시집을 읽는 것은 뷔페를 즐기는 것입니다. 52명의 시인과 52편의 시. 52명의 요리사와 52가지 요리를 만나는 것. 이것이 뷔페의  미학 아니겠습니까?

 "요리 이름을 안다고 맛을 아나 먹어봐야지 읽어 봐야지 주방장 이름까지 알 필요는 뭐가 있나 배만 부르면 되지."

이렇게 마음먹고 식당에 들어섭니다. 식당의 메인 테마는 술입니다. 술과 연관된 시들의 모음. 뷔페답지 않습니까? 뷔페식당의 메인 메뉴는 술,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인사라도 하는 게 이 시집에 대한 예의, 존중되겠습니다.


[반성 21 김영승]

'모두들 한 일 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을 끊어야 사람이 된다, 술을 끊으면 친구도 끊어야 할 텐데, 친구를 끊고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그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문인이 내 친구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친구 끊고 사람이 될 수 없다. 친구가 몇이나 된다고, 친구가 평생 지음을 할 친구는 둘이 넘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를 끊고는 사람도 아니지요. 대신 사람 아닐 때 까지는 마시지 말기를!


[물류창고 이수명]

 '와인이 도움이 될 거야 잔을 부딪치는 것이 도움이 될 거야'

이 시집의 제목이 된 문장입니다. 이수명의 물류창고가 이 시의 제목이고요, 왜 제목이 물류창고 인지는 모르지만 '불면'이 주제 같습니다.

 불면은 잠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깨어 있는 것입니다. 불멸과 불면, 한 끗 차이.

 "깨어 있으라" 

산에서 예수가 기도하떠나기 전 제자들에게 말했다지요.

"포도주 한 잔 했는 데 어찌 안 잡니까?"

그렇게 따진 제자는 없었겠지요.

"불멸할 당신 왜 불면에 시달리게 우리를 괴롭히나요. 포도주 한 잔. 당신의 피로 나를 푹 자게 해 주세요."

이렇게 말한 제자도 없었겠지요.

예수는 잠든 제자를 깨우지도 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는 아량 있는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술도 끊으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술도 만들고 온 몸의 피조차 술로 바꾼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왜 물류 창 고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작가들은 이런 질문을 싫어하겠지만"


[혼자 있기 싫어서 잤다 유진목]

혼자 자는 것보다 같이 자는 게 재미있는데.......

혼자다. 혼자서도 잘해야 하는 것은 6세 아이만 아니라 50세 아저씨도 해야 할 일입니다. 6세를 위한 야쿠르트 50세를 위한 진로.


[그런 일이 어딨노 경  박규리]

술 먹고 하는 실수 중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고백입니다. 술 마시고 하는 고백의 부작용은 단 하나, 고백받은 사람도 취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입니다. 다음 날 상대가 나의 고백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고백의 실패가 아니라 고백의 거부입니다.

"나 술 먹어서 기억이 안 나 하나도" 상대는 거부 한 걸 까요,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걸까요? 고백한 사람은 고민에 싸입니다. 다시 고백해야 하는 가 말아야 하는 가? 상대에게 핑계를 주면 안 됩니다, 차라리 싫어가 더 나은 것이니까요.

술 마시고 고백하지는 말자, 술 마시고 난 아침에는 고백하지 말자(숙취니까),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고백하지 말자, 차라리. 고백 없는 세상에 살자, 연애는 어쩌냐고요 그건 난 모르겠습니다.

 

[장화 이정록]

 웃음이 납니다. 시를 읽다가 피식피식 웃는 경우가 드문드문 있습니다. 코미디를 보는 재미 비슷합니다. 시는 매사 진중하고 진지합니다. 시를 보다 웃으면 시를 비웃거나 시인을 우습게 여기다는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가 재미있다는 표현을 시가 좋다는 뜻의 변형으로 쓰기도 합니다. 저는 시가 재미있다는 말은 진짜 재미, 웃긴 코믹한 시라는 표현으로 씁니다.

이정록 시인의 장화, 웃깁니다. 

"술이 좋아도 웬간해야지"

술도가에서 술독에 빠진 사연, 술독에 빠진 사람, 진짜 술독에 빠진 이야기입니다.


뷔페의 맛은 뭐니 뭐니 해도 종류가 많다 아니겠습니까? 뷔페에 가면 모르는 음식도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도 만나게 됩니다. 시집 뷔페에는 많은 시가 있고, 많은 시인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시들이 내가 만나고 싶었던 시인들이 숨어 있습니다. 즐거움이 거기에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의 조우.


[탈 것 이근화]

저는 이 시인의 팬입니다. 내가 팬인 시인의 시가 있다는 것은 이 시집을 읽는 힘, 시집을 구매하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사는 힘이 됩니다.


[열대어는 차갑다 김소연]

반대의 경우도 뷔페의 맛이 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안 먹을 것을 먹어 볼 기회. 뷔페에 갔는 데 맨날 먹던 것만 먹는다, 왠지 아쉽지 않습니까? 요리 이름도 모르고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새 맛 세계를 만날지 모릅니다. 뷔페에서는 그런 조우가 펼쳐집니다.

사전 정보 없이 맛 만으로 만난다. 시가 주는 그것으로만 맛을 느낀다, 선택하지 않았지만 묶음 안에서 새 시를 만난다. 새 시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김소연 열대어는 차갑다, 뷔페에서의 새로운 만남입니다.


[흔들리는 날 박남준]

 눈이 없는 겨울이 지나고 있습니다. 술은 그리움을, 지난 사랑을 위한 것일 테지요? 슬프지 않은 자에게 술이 왜 있어야 하겠습니까?

흔들리는 날, 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눈이 오는 날, 술의 날 되겠습니다.


[한 낮, 대취하다 김경미]

 정말 눈이 온다면 낮술을 마시면 좋겠습니다.

술은 약이다. 노인들은 약주라고 합니다. 술을 먹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이해 못 할 말 입니다만.  사실이라면, 잠이 오지 않는 자에게는 수면제를 이빨이 아픈 자에게는 진통제를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자에게는 술을 처방해야 할 것입니다.


[술잔 같은 산 정겸익]

술은 약이다라는 말은 술이 좋은 사람들의 변명이거나 주정뱅이들이 조작해 낸 말이겠지요. 술이 너무 좋은 사람에게 (술을 너무 마셔서 더는 마시지 못하는) 술이 너무 싫은 사람에게 세상은 온통 술잔처럼 술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겠지요. 산도 호수도. 모두 다. 

주정뱅이에게는 모든 세상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세상 모든 주정뱅이에게 축복을.


[꽃 피면 달 생각하고  이정보]

온통 술 생각뿐인 당신, 의료보험의 축복이 내리길 기도합니다.

 


2편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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