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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Apr 29. 2024

혼자인 시간 속에서의 의미 찾기

혼자인 시간은 오롯이 나와 마주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을 끼우지 않고 나만을 중심으로 알게 모르게 일어났다 스리슬쩍 사라져 간 모든 일에 대해 

또 그 처신에 대한 자기반성(自己反省)을 통해 자신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 보고 다시 한번 점검해 봄으로써 마음을 굳게 다져보는 계기를 


거기에 더해 나는 누구인가? 에 포커스를 맞춰 이제까지는 볼 수 없던 나에 대해 알아가면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는 에너지의 배터리가 충분해서 인지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탓에 항상 무엇인가를 찾아 시도해 보느라 이것저것 하는 것도 많았지만 지치는 줄도 모르고 당연한 듯 매일 바쁜 나날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때는 

다른 이들처럼 남편과 아이들을 출근, 등교시키고 동네 아줌마들과 "모두 헤쳐 모여" 구호에 맞춰 "오늘은 누구네 집으로!"... 


어떤 날은 "스템피드(Stampede)"를 외치며 백화점으로 우르르 몰려가 함께 쇼핑을 마친 후 핑계김에 맛있는 점심도 해결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리를 옮겨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수다 디저트까지...


그것뿐인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카풀(Carpool)을 하듯 여러 명이 한 차에 몸을 구겨 싣고는 라이브 카페에 가서 우리가 좋아하던 옛날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흥에 취해 박수도 쳐보고


아낙네들 수다에 국룰처럼 등장하는 남편 험담, 묻지도 않는 자식자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하루종일 떠들어 대고도 모두가 돌아오는 저녁시간이 되면 헤어지는 게 아쉬운 듯 "집에 가서 전화해"라는 말을 남기고는 드디어 각자의 집으로...


그런 여유가 넘치는 삶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겐 그저 사치일 뿐 늘 종종 대던 삶을 살다 보니 질투를 가장한 부러움이었나?

"이웃들과 시간만 보내는 일은 내겐 어울리지 않아... "


어쩌면 한창때라 자신감과 자존감이 극을 찍고 있었을 테니 그렇게 믿고 있는 자기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고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돌보면서 당시 내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이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나의 일도 하면서 혼자서만 분주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 교만일 수도 있다.


반면에 뚜렷한 성과가 눈에 보이고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해야만 성공(成功)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는 지나친 강박과 그것에 비하면 내 삶은 한없이 하찮은 것 같다는 자기비판으로 생채기 내는 것인 줄도 모르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마구 휘둘러 대는 아픈 채찍일 수도 있다.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일에 치이고 강박에 치여 무엇엔가 떠밀리듯 사는 삶이 아니라 가끔은 쉼표를 찍으면서 살았을 것을... 그랬다면 조금은 덜 외로웠을 텐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다른 이들처럼 그 속에 끼여 여럿이 어울리면서 사는 삶도 별로 나쁘지 않겠다 싶고 나 스스로에게 그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주면서 살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어 진다.





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변해 갈수록 혼자인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함께여야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과학의 폭풍성장으로 계속 연구하고 만들어 내는 기기들과 로봇의 도움 탓에 이제는 혼자라도 가능해지고 있다.

 

그들이 우리 일을 대신해 주니 편리함을 안겨다 주긴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만고의 진리(萬古의眞理)가 있으니 생활이 풍요로워지는 대가는 지불해야 할 테다.


편해질수록 한가해져야 하는데 더 바빠지고 똑똑한 사람들이 차고 넘치니 일단 사회에 나오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느라 밟고 올라가야 하는 법부터 배우면서 살아간다


갈수록 "나만 아니면 돼"가 만연(蔓延)해가는 우리의 삶은 어느새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대세가 되어가면서 눈에 띄게 각박해지고 그 옛날 시골 변두리에서나 느끼던 사람냄새와 온기를 그리워하게도 된다.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시간에 쫓기며 사는 젊은 엄마 아빠

밖에서는 일에 치이고, 쉬고 싶어 들어온 집에서는 바가지 긁어대는 아내가 괴로운 가장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모든 집안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내

세상사 힘들어 숨 막히는 보통의 사람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渴求)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삶을 지향(志向) 하다 보면  혼자가 어색할 수도 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고독감이 두려워 일부러 사람을 찾아 혼잡한 곳을 뒤지게 되고 그러다 다시 혼자가 되면 더 큰 외로움이 밀려와 견딜 수 없는 고독감으로 또 누군가를 찾게 되는 의미 없는 악순환의 반복...


하지만 혼자인 시간도 익숙해지면 때로 함께여서 불편할 수 있는 것들부터 자유로워지니 오히려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꼭 보람되고 가치가 있는 것을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니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때로는 따뜻한 커피 한잔 내려놓고 파란 하늘만 바라보아도 행복할 때가 있다.

햇빛이 살짝 비추는 창가에 앉아 멍 때리고 있어도 좋고

맛있는 음식이 친구라도 해 준 다면 더더욱 따뜻해질 수 있다.


높은 산에 오르는 동안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산꼭대기 정상에 우뚝 서서 목을 가다듬고 소리 높여 "야호"를 외치며 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한껏 토해 내기도 하고,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 질질 콧물 쏙 빼는 추잡(醜雜)스러운 과정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기도 할 것이다.


나 홀로의 시간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오랜 친구처럼 책을 읽는 순간은 언제나 평온하고 그 어떤 말 한마디의 위로보다도  크나큰 울림을  받는다.


책 속의 글들이 전하는 메시지나 교훈(敎訓)들이 상처받아 축 처져있는 내 어깨를 토닥여 주기도 하고 작은 공감을 통한 치유까지 선사(膳賜) 하기도 한다.


그 시간이 바로 내게는 힐링의 순간이다.


그래도 살다 보면 가끔씩 머릿속은 물론이고 마음속에서도 롤러 코스트와도 같이 요동치는 감정 변화들 때문에 힘들어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나 갱년기 이후의 여자로 나이 들어가는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럴 때는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혼돈(混沌)과 내적 갈등(葛藤)을 마음속에서 밖으로 끄집어 내 글을 쓰기도 한다.


글이라고 해 봐야 끄적끄적 일기 형식의 간단한 글들이 전부이긴 하지만

소박하고 하찮은 일상이 가끔은 알 수 없는 기운을 주기도 한다.


느슨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는 휴식처럼 나만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이제껏 방치하고 사느라 볼 수 조차 없었던 내가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다 들여다볼 수는 없어도 누구에게든 삶이 완벽할 수는 없다.

쥐고 있지 말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해 힘이 빠지기도 하고 잡고 싶은 것을 손아귀에서 넣지 못해 갈망에 허덕이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부족한 것 투성이라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버릴 것은 과감히 던져 버리고 얻을 것은 두 팔 가득 취하면서 자신의 삶을 과감히 걸러보는 자기 성찰(自己省察) 완성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과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가끔이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꼭 필요한듯하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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