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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Apr 09. 2024

뚜벅뚜벅 걷는, 삶이란

이디스 워튼의 ≪버너 자매≫를 읽고, 책과 이야기


을유문화사에서 <여성과 문학> 리커버 작품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여성 작가 5인의 작품이 출간되었습니다. 여성 작가 5인 가운데 미국 작가 이디스 워튼이 있는데요.       


이디스 워튼은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와 인간의 모순을 묘사하는 리얼리즘과 자연주의 문학의 전통을 보여주는 문학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로,  1905년 <환락의 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된 근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을유문화사에서 이번에 리커버로 출간된 이디스 워튼의 문학 작품은 중단편 소설집 ≪버너 자매≫입니다. 이 소설집에는 중편 소설 한 편과 단편 소설 두 편이 들어있는데요. ≪버너 자매≫와 <징구> 그리고 <로마열(熱)>입니다. 세 작품 가운데 제목으로 사용된 ≪버너 자매≫를 소개합니다.     


≪버너 자매≫


"뉴욕시가 활기 없는 마차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고, 사람들이 음악 아카데미에서 소프라노 가수 크리스티나 닐슨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며,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벽에 걸린 허드슨 리버 화파의 풍경화 속 노을빛을 따사로이 쪼이던 시절."(p.9)


미국 뉴욕의 오래되고 인적이 드문 뒷골목에 위치한 누추한 지하에 아주 작은 가게가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앤 엘리자와 애블리나 자매의 생계 터전이자 생활공간인데요. 


가난한 살림살이지만 두 자매는 이곳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살펴 가며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두 자매의 인생을 흔들어 놓은 허먼 래미라는 남자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어느 날 불쑥 그녀들의 인생으로 들어온 이름 밖에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허먼 래미라는  남자로 인해, 두 자매의 일상은 그와 함께 있는 시간과 그가 없는 시간으로 나뉘어, 확연한 온도차를 나타냅니다.


"버너 자매는 이제 가게 안에서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단조롭게 느껴졌다. 램프 앞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을 길고 무덤덤했으며, 따분한 바느질과 핑킹 작업을 하며 습관적으로 주고받는 대화는 무의미했다."(p.37)


19세기 말 다윈의 사상은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요. 당시 유럽에서 거주하고 있던 워튼은 "인간이 유전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자연주의 사상"의 영향을 가장 먼저 작가로, 이후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디스 워튼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마는데요. <버너 자매>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19세기 시대상과 사회 변화를 담은 작품으로, 이 책에 나오는 두 주인공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주 조용한 밤이었다. 애블리나는 다시는 말을 하거나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이 오기 전 그 고요한 시간, 앤 엘리자는 이불 밖에서 쉬지 않고 떨리던 애블리나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는 것을 봤다. 그녀는 동생 몸 위로 허리를 굽혀 동생의 입에서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p.140)




<여성과 문학> 이번 리커버 작품은 표지가 유리와 한지로 이루어져 있어 소재면에서도 굉장히 독특한데요. 표지 리커버 작업을 맡은 홍지희 화가는 2018년 노블리스 잡지사와 인터뷰에서 "여자의 정체성, 그리고 여자만이 디자인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심경을 밝힌 바가 있었기에, 


홍지희 화가에게도 이번 리커버 작업은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요. "여성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였고, 자아에 대한 태도는 내가 쌓아 온 이야기와 닮아 있었다. 또한 과거와 현재가 맞닿으며 변주할 듯 맴도는 우리의 모습 같았다. 그래서 형태와 물성이 주는 특성만으로 일체의 설명 없이 교집합을 이루는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을 했다고 전합니다.  




≪버너 자매≫는 을유서포터즈4기 미션 도서로 받게 된 작품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는 순간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초반에는 솔직히 실망했는데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에밀리 디킨슨, 시몬 드 보부아르. 잘 알려진 4인과 달리 이디스 워튼은 작가도 작품도 너무 생경했고, 두 번째는 작품에서 그려진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암담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랜덤으로 받은 책 덕분에 낯선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되었고 작품 속에 그려진 동생을 생각하는 앤 엘리자의 헌신적인 사랑과 시련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삶을 향해 나아가는 숭고한 정신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맑은 봄 하늘 아래 이 거대한 도시가 무수히 많은 일을 시작하려고 움직이며 고동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구인 광고가 붙은 가게 창문을 찾으며 계속 걸어갔다."(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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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이디스 워튼의 버너 자매, 브런치's 책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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