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그렇게 말을 잘해요?"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하지만 나는 그저, 마음을 읽고 싶었다.
소통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기술을 배우고 있었던 셈이다.
누군가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을 때
"그게 뭐 기분 나쁠 일이야?"
이렇게 되묻는 순간,
그 사람의 감정은 길을 잃는다.
나는 상대가 아니기에,
그 마음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 단순한 사실을 잊는 데서
소통은 자주 멀어진다.
소통은 언제나 '듣기'에서 시작된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제대로 듣는 사람은 드물다.
상대의 말을 내 기준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
추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생각보다 어렵다.
얼마 전, 디지털 수업을 들으러 갔다.
첫 화면에 뜬 단어는 의외였다.
'소통'.
디지털 수업에 웬 소통일까 싶었다.
하지만 곧 이해가 됐다.
기술보다 마음을 묻는 수업이었다.
강사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물었다.
"어떤 자세로 서로를 대해야 할까요?"
그 질문 하나가 수업 전체를 바꿔놓았다.
우리는 모두 소통을 원하지만,
정작 그 방법을 배운 적은 없었다.
소통이 가장 어려운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다.
"쟤는 원래 저래."
"우리 가족은 그럴 리 없어."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상대를 옭아매고,
결국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이해할 줄 알았어."
하지만 이해에는 경계가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끝내 나는 타인일 수밖에 없다.
진짜 소통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먼저 보여주는 용기.
나는 낯선 사람 앞에서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러면 상대는 눈빛으로 묻는다.
'이 사람에게 내 마음을 보여도 될까.'
그 망설임이 풀리는 순간,
보이지 않던 물길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게 소통의 시작이다.
이때 "내가 너를 잘 안다"는 말은,
오히려 불통의 시작이 된다.
소통은 동조가 아니다.
꼭 공감하거나
감정을 맞춰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함께 그 자리에 머무는 것.
가장 큰 슬픔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때, 침묵이 언어가 된다.
밤이 깊을수록
말보다 마음이 더 멀리 닿는다.
서로의 온기만 남는 그 순간,
침묵은 가장 완전한 문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