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해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았던 것이 언제였던가. 아마 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그 물음을 던지는 이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 꿈은 아이들만의 소유가 되어버렸다. 정작 아이들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데, 어른들은 그 여정보다 결과를 재촉하듯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 나에게 꿈은 이제 막연한 동경이 아니다. 오히려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현실의 목표였다. 가령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는 것처럼.
다시 꿈을 꿔야 하는지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남자아이 셋을 키우는 시간은 전쟁과 같았으니까. 사건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고 그것을 수습하기에도 하루가 빠듯했다. 얼마 전 셋째가 티볼하다 손가락 골절이 되었으니까. 이런 상황속에서 나에겐 하루하루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다. 꿈은 말 ‘이룰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큰아이와 둘째의 진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꿈에 대한 대화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는 아들은, 꿈이 막연하게 ‘돈 많이 버는 직업’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대신 꿈을 꿔줄 수 없는 노릇이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때 불쑥 아들이 물어본다. “엄마의 꿈은 뭐야?”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렸을 때 분명히 있던 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나는 물처럼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흘러갔다. 졸업 후 당연하듯이 취업했고, 엄마가 되어 아이를 낳고 기르며 꿈은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도 꿈이 있다는 것을.
잊었던 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망망대해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내가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주저할 수 없었다. 가까운 것부터 뒤돌아보았다. 내가 여유 있는 시간에 가장 무엇을 제일 많이 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한지. 자꾸 나를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답을 찾았다. 우연히 본 ‘글쓰기 관련 홍보 현수막’은 잊어버렸던 지난날의 꿈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 순간,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 나는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글'로 버텨냈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마음의 매듭이 풀려나가는 듯했다. 그때 나는 소설가가 되어 이 답답함을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밥 먹고 못 산다”는 엄마의 한마디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그 꿈을 잘라냈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꿈이, 바로 그때 꾸었던 그 꿈이 소환이 된 것이다.
이후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꿈은 점점 커지고 구체화 되어갔다. 처음 꿈꿨던 소설가의 꿈은 아니지만 내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꿈을 조금 변형하여 흔들리지 않게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만들어 가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금은 오래 걸리고, 완전히 완성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아이들은 완성된 ‘결과’가 아닌, 지금 이 순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꿈을 만들어 갈 테니까.
꿈은 변할 수 있고,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워가고 있다. 매일같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교육 아닐까.
현재도 내 꿈은 진행 중이다. 상상을 한다. 어느 날 내가 쓴 책이 서점 한곳을 차지하고 있어 내 책을 읽은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치유되는 그날을.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꿈을 향해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