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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여니 Jun 29. 2023

영화 속 엄마를 닮고 싶었어

발달평가를 하러 가던 날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객관적인 판단이 섰던 그날. 그 이후부터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불안증이었다. 아이의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 예민해지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모습이 보이면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인터넷상의 수많은 병명과 엄마들의 경험담으로 가득한 카페 글들. 많은 글들을 보니 그전까지는 정상적으로 보였던 모습들이 갑자기 다 병처럼 느껴졌다.


여러 행동 중 제일 걱정되었던 것은 눈 맞춤이었다. 10번을 불러 불러 마주 앉아 대화를 하려고 하면 자꾸 눈을 맞추지 못하면서 힘들어했다. 시선을 멀리 또는 밑을 보면서 똑바로 보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시력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안과에 가서 검사를 했다. 여러 검사를 하고 나서 눈에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심리적인 문제였다.


어느 날 시댁에 방문했을 때 아이는 평소처럼 하루종일 거실에서 왔다 갔다 뛰며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놀았다. 어른들이 보시기에도 평범하지 않은 손자 모습에 시부모님께서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니? 말하는 것도 또래보다 훨씬 느리고 걱정이 된단다. "


“아니에요. 원래 집중할 때는 아무것도 안 들리잖아요. 집중력이 뛰어나고 똑똑한 애들 특징이래요”


알고 있지만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나는 회피하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바로 틱 증상과 자폐증을 검색했다. 남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검색을 할 때마다 공포가 밀려왔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만약에 나에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어릴 적  봤던 ‘말아톤’이라는 영화에서 엄마 역할의 배우가 너무 멋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들을 위해서 부당함과 싸우고 힘들어도 버티는 모습.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였기에 당연히 모든 엄마들은 영화 속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내 아이에 대한 시선을 못 견뎌했다. 쉽게 휘둘리고 쉽사리 무너지는 약한 사람이었다.


"강하지 못한 엄마라서 미안해"


발달 평가를 하러 가기 전 몇 날 며칠을 자는 아이를 안으며 속삭였다.


발달평가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 손을 꼭 잡고 소아 정신과로 들어섰다. 소아 병원이어서 그런지 상상했던 것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데스크 앞에는 의자에 앉아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커다란 화면에 만화가 나오고 있었는데 만화 속의 색색의 캐릭터와 나오는 노래가 병원을 밝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들어오세요."


상담 선생님께서 책상이 하나 놓인 작은 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째깍째깍 벽에 걸려있는 동그란 시계의 초침소리가 크게 들리고 심장이 긴장으로 쿵쾅거렸다. 한 이삼십 분쯤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아이가 나왔다.


“발달 평가는 잘 끝났습니다. 일주일 정도 후에 결과 나오면 그때 다시 내원하셔서 원장님 뵙고 상담하시면 돼요.”


“그리고 우리 친구가 잘해줘서 금방 끝났어요. 꼭 칭찬해 주세요.”


선생님께서 안내와 함께 따뜻한 말을 건네어주셨다. 그 목소리에 긴장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책상에 5분 이상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가 생각보다 오래 버텨줘서 기특했다. 긴 상담에 힘들었는지 아이의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어깨를 끌어당겨 꼭 안아 주었다.


"힘들었어?"

"..네.."

“수고했어. 우리 아가”


'우리 아이에겐 지금 잡은 엄마손이 세상의 전부일 텐데 내가 단단해져야 돼.'


이날 우리는 병원문을 나서며 손을 꼭 잡고 더 행복해질 미래를 위한 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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