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상과망상사이 Jul 24. 2023

그늘

빛바랜 상패

“충성! 이경 박지현 외 1명은 2020년 2월 20일부로 서대문 방범순찰대 전 대통령 사저 경비 소대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나의 꿈은 군인이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멋있었다. 전쟁 영화 속 나라를 위해 장렬히 전투하는 군인들을 향해 환호했고, 희생되는 군인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무엇보다 특전사령관 출신이었던 우리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퇴역하기 직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순금상패는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났다. 어렸던 나는 줄곧 상패를 이빨로 깨물며 티 없이 해맑은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가만히 바라만 보셨다.


“아빠, 대통령한테 상 받을 정도면 아빠 정말 대단한 군인이셨겠네요?”


“어… 그래…“


나는 아버지에게 현역 시절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 대곤 했지만 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대답을 얼버무리기만 하셨다. 상관없었다. 상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햇빛에 반사되는 금빛이 내 눈을 찌를 때마다 군인에 대한 꿈은 커져만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생기부에 적힌 나의 꿈은 언제나 군인이었다. 친구들에게도 아버지 자랑을 했었다. 아버지는 군인으로서 공을 세워 대통령께 상도 받으셨다고. 나도 아버지처럼 멋진 군인이 돼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군인만큼 멋있는 직업은 없다고. 친구들은 어차피 성인이 되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되고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죽는 것이 군인이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군인의 길이고 나라를 위한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중학교 역사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의 아픈 현실이 집약돼 있는 현대사에 대해 배웠다. ’1980년‘, ’광주‘, ’계엄군‘, 누군가 우리나라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하는 때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이름은 빛나는 상패에 적힌 아주 익숙한 이름이었다. 역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상패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께 물어볼 수 없었다. 집안 곳곳을 뒤져보니 방 한 구석에 박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느샌가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반짝거리기만 하던 상패는 더 이상 빛을 내지 않았다.


“오늘도 골프장 간 댄다. 지현이 짬 좀 먹었으니까 이번에 너가 가라.”


이 양반은 전 재산이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맨날 골프장을 전전했다. 이제는 더 지켜줄 경호원도 없는지 의경 대원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구름 한 점 끼지 않는 뙤약볕의 골프장은 그야말로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이 양반은 걸음도 느려서 홀을 옮기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군인에 대한 대우가 그렇지… 나는 우산도 없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라운딩이 끝나고 카트에 타기 직전, 땀을 뻘뻘 흘리는 나와 이 양반의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덥냐?”


“아닙니다!”


“아니긴 이 친구. 더운데 고생이 많다.”


곁에 있던 캐디의 우산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곤 카트를 타고 유유히 떠났다. 내리쬐는 햇빛을 잠시라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산을 곧장 피려던 나의 손은 멈칫했다. 이 우산이 주는 그늘 아래 아버지가 먼저 있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1년 9개월간의 군생활은 그 양반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부대 짐을 다 챙기고 집에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그 소식을 뉴스로 보고 계셨다. 세상은 환호했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묘한 쓸쓸함에 잠겨 있었다.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걷어낼 수 없는 어두운 그늘로부터 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돌아온 탕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