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요즘 장마철이라 그런지 비가 참 많이 온다.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빗방울을 쳐다보기가 두렵다. 토요 당직을 섰던 그날. 나는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새벽 업무를 보고 있었다. 시침이 1시를 향해가고 있을 무렵 울린 신고 전화벨소리는 눈 위를 짓누르고 있던 무게추를 치워버렸다. 방화복으로 환복하고 장비를 챙기고 있는 동안 경보음이 소방서 내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도착한 사고 현장은 이미 쑥대밭이었다. ‘희망 청소년 수련관’이라 써진 간판은 그 글씨를 못 알아볼 만큼 검게 타버린 채 떨어져 있었고 건물은 이미 불기둥에 휩싸여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피한 상태였지만, 발화 지점인 3층에 아직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정황을 듣고 곧장 그곳으로 올라갔다. 불 속에서 콜록이고 있는 아이 두 명과 쓰러져 있는 아이 한 명이 있었다. 두 명의 아이에겐 담요를 덮어주고 의식을 잃은 아이를 품에 안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비가 야속하게 내리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답니다.“
일찌감치 대피한 유치원 원장이란 놈이 말했다. 나의 코를 찌르는 진한 알코올 냄새는 비가 없애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놈의 말보다 나의 품 안에서 들려야 할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시끄럽게 울리는 소방차의 사이렌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때문일 것이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쏟아진 빗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 해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 속에서 한별이라는 아이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어린아이의 영정사진을 보러 가는 발걸음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가도 될까, 질문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도 나는 한별이에게 가고 있었다. 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반기는 한별이 어머님의 따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듯했다.
“당신이 그 소방관이지? 당신이 좀만 더 일찍 들어갔으면 됐잖아! 당신네들이 좀만 더 일찍 출동했으면! 아이고, 우리 불쌍한 한별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볼이 빨갛게 부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사진 속 웃고 있는 한별이 앞에 섰다. 새카만 재에 가려져있던 이 예쁜 아이의 미소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주엔 출장에 가신 한별이의 아버님 대신 외삼촌이 계셨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맞절을 하고서 바로 일어서지 못했다. 원장은 여기서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 불쌍한 한별이’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그 역겨운 알코올 냄새를 맡기 싫어 옆을 지나가지도 않았다.
가지 말라는 동료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별이의 하관식에 갔다. 아니, 가야만 했다. 장맛비가 이미 나의 가슴을 뚫고 검게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마가 끝나도 이 검은 비가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한별이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켜 봐줘야 그칠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에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하관식이 끝나 있었다. 그렇게 한별이는 하나의 별이 되어 떠났다. 내려오는 행렬들 사이에서 나의 눈과 발은 땅에 처박혀 있었다. 그저 가족들과 조문객들의 발끝말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들이 다 내려갈 때 즈음에서야 내 앞에 인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들었다. 한 남자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한별이 아버지입니다. 그 소방관님 맞으시죠? 이렇게 한별이의 마지막까지 먼 발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별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은 들고 있던 우산을 던지고 망부석이 돼버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코끝에서 떨어지는 것이 내 눈물인지 빗방울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