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일 때나 즐거웠다
작가 데뷔를 목표로 웹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글을 시작해, 그 글이 플랫폼에 정식 출간되기까지는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새로운 진로를 그리며 다니던 국비 지원 학원을 수료했다. 포트폴리오도 만들었고, 자기소개서도 썼다. 실질적으로 취업의 기회도 생겼었다. 하지만 출근까지 여유가 없는 일정이었고, 한참 마감에 시달리던 중이던 나는 결국 거절했다.
안일하게도 또 기회가 올 줄 알았다. 더불어 글에만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을 더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는 한편, 도저히 회사 적응과 원고 마감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글을 우선으로 택한 이유도 있었다.
그 무렵 정말 출간만 바라보고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출간 과정은 취미로만 글을 써오던 나에게는 꽤 힘겨웠었다.
취미로 글을 쓸 때는 무엇을 어떻게 써도 좋다는 반응만 받아왔었다. 그러나 출간을 목표로 삼은 시점부터는 달랐다. 출간의 발판으로 이용되는 무료 연재 사이트에 글을 올리자 냉정한 반응들이 심심치 않게 돌아왔다. 무료로 소설이 연재되기는 하지만, 그곳의 독자들도 이 글이 상업 작품이 될 거란 사실을 전제로 하고 읽는 터라 꽤 냉정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듯했다.
내가 처음 당황했던 건, 캐릭터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욕 먹으라고 만들어 놓은 캐릭터가 욕을 먹으면 의도대로 되고 있다며 즐길 만할 테다. 하지만 그 캐릭터는 아니었다. 착한 성격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캐릭터건만 무료로 연재하는 내내 욕을 아주 많이 먹었다.
후반부로 갈 수록 나도 적응했고, 그 캐릭터의 편을 들어주는 독자들도 생겨나긴 했다. 그러나 적응하기까지는 엄청나게 당황스러웠다. 이 캐릭터가 왜 욕을 먹는지 이해가 안 됐고, 저렇게나 욕을 하니까 내가 캐릭터를 잘 못 짠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 편 한 편 올릴 때마다 실시간으로 반응이 와 움츠러들기도 했다. 단 한 줄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될 것을 암시했건만 그걸 가지고 벌써 고구마라며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워낙 사이다 서사가 인기인 시대라곤 하지만, 그저 필요한 내용의 일부분일 뿐인데(구상하는 내 입장에서는 고구마가 아니라 오히려 그간 잔잔하게 깔린 고구마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였다.) 지레 고구마라며 답답해 하니 이 흐름으로 가면 안 되는 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속상했다. 처음으로 상업작을 꿈꾸며 작심하고 쓴 글이다 보니 애정이 많기 때문이다. 그 글에도, 글 속 캐릭터에도 애정을 많이 쏟은 터라 해당 캐릭터를 욕하면 그 글 전체를 욕하는 것 같았고, 내 글 솜씨를 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내 작품과 나는 같지 않은데 처음이라 서툴다 보니 분리가 잘 안 됐던 거다. 작품과 나의 분리가 되지 않아 힘들었던 일은 정식 계약 이후에도 지속됐다.
무료 연재의 우여곡절 끝에 총 세 곳의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다. 두 곳은 출간 이력은 꽤 있지만 업계에서는 중소로 꼽히는 규모였다. 그 두 곳에서는 내 글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며 출간을 제의했다.
나머지 한 곳은 소위 "흩날려라"라고 말하는 컨택이었다. 작품에 대한 감상도, 계약 조건에 관한 언급도 없이 덜컥 계약 의사를 묻는 컨택이 그렇게 불리곤 했다. 그래도 출간을 염두에 두고 하는 연락인데 작품도 안 보고 무작정 아무한테나 제의를 하겠냐마는. 막상 여러 곳의 제안을 동시에 받아보면 그 정성에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는 곳에는 내 마음도 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그래서 계약 성사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 작품을 연재할 때는 이곳에서 간단한 피드백과 계약 요건을 포함한 컨택이 왔었다.)
아무튼 간에, 나는 전자 중 한 곳과 계약을 했다. 그리고 정말 상업 작품으로 선보이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출판사마다 작품을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피드백을 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전적으로 원고는 작가에게 맡기고 교정만 해서 나가는 곳, 그 둘 사이의 적정한 수정을 거치는 곳 등등. 내가 작업을 했던 곳은 꽤 꼼꼼하게 피드백을 하고 적극적으로 수정을 요청하는 곳이었다.
물론 나한테만 그랬을 수도 있다. 상업 작품은 처음인지라 미숙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들이 독자에게 낯설기 때문에 충분히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점마저도 나는 잘 몰랐었다. 그렇기에 일종의 상업작 규칙에 맞게 수정을 거듭해야 했고, 심할 때는 한 권의 내용 자체를 몇 번씩 엎으며 스토리를 다시 구상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어려웠다. 그때 나는 거의 멘붕 상태였다. 내 딴에는 열과 성을 다해서 쓰는데, 그게 독자 시점에서는 불호로 보일 수도 있으니 고치자고 하면 그냥 내가 글을 못 쓰는 것 같았다. 그래도 딴에는 백일장에 나가 상도 받아 보고, 취미로 글 쓰면서 잘 쓴다는 칭찬도 꽤 들어봤는데 딱 그정도였나 싶기도 했다. 직업 글쓰기로는 소질이 영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이런저런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거치자 이게 내 글이 맞긴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게 소위 말하는 기획 작가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교정고를 열었는데 몇 페이지가 다 수정 요구로 시퍼런 글씨가 되어 있을 때는 그대로 노트북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글이 꼴도 보기 싫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당시에 그랬다는 얘기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출판사에서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 상업작에 대해 1도 모르는 내게 한 스텝, 한 스텝 다 알려주려다 보니 자연히 빡빡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어쩌면 취미 생활을 하던 대로 글을 써보려던 내 안일한 마음가짐 때문에 더 역풍으로 느껴졌는 지도 모르겠다. 은연중에 웹소설이라는 분야를 친근하다 못해 만만하게 보고 있었을 수도 있고.
사실 지금도 웹소설이라고 하면 아무나 쓸 수 있는 글로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독자에게 글을 판매할 목적으로 집필을 하는 이상, 아무나 쉽게 쓸 수 있는 글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경험치가 쌓이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질 만큼 능숙해진다면 더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 첫 걸음은 결코 쉬울 수 없다는 게 직접 경험한 나의 소감이다.
그래서 내 첫 걸음의 결과는 어땠느냐 하면. 무난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의 대박!은 아니었지만, 나는 만족할 만한 성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이미 신인에게는 팍팍한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점을 고려하면 첫 작품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덕에 나는 두 번째 작품을 시도해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