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리에 Jun 04. 2023

정신과로 달려갔다

멘탈 터진 웹소설 작가의 발버둥, 그 시작

두 번째 작품이 잘 된 뒤 찾아온 슬럼프, 슬럼프를 떨쳐내지 못한 상태로 마른 수건 꽉꽉 짜서 연재 완결을 친 후에 찾아온 번아웃. 이 두 가지가 겹친 상황은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나마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무언가를 계속 해보려는 욕구는 있었다. 그게 마음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진행이 안 되어 답답했었지, 꾸준하게 어떠한 시도를 해볼 의욕은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꾸역꾸역 한 작품을 완결내고 나서 찾아온 번아웃은 답이 없었다.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욕 자체가 들지 않았다. 


완결을 냈으니 잠시 쉬어도 되는 거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연재의 경우에는 완결이 다가 아니다. 외전 명목으로 남아 있는 분량이 더 있었다. 고로, 마냥 쉴 처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외전은 연재 분량이 단행본으로 출간될 무렵 함께 공개되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는 조금 있었다. 그래도 나는 캐릭터가 손에 익었을 시기에 바로 외전을 끝내버리고 싶었다. 쉬었다가 다시 동일한 캐릭터로 글을 쓰려면 그 흐름을 찾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마음처럼 할 수는 없었다. 마른 수건을 짜다 못해 수건의 실밥까지 뽑아 겨우 완결을 낸 처지라, 도저히 외전을 뽑아낼 여력이 없었던 거다.


도무지 글이 나오질 않는 상황이니, 이렇게 된 거 한 달이라도 좀 쉬자 싶었다. 그런데 사람 맘이란 건 왜 그리도 복잡한지. 쓸 의욕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불안감은 잘만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맞나? 그치만 무엇도 할 힘이 없는걸.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맞나? 못 하는데 어떡해. 불안과 무기력이 무한대의 사이클로 돌았다.


머릿속을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은데 그마저도 힘들었다. 자꾸만 올라오는 불안 때문인지 부정적인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두 번째 작품을 마친 뒤에는 또 이런 작품을 써야한다는 부담이 나를 짓눌렀다면, 이때는 앞으로의 작품도 계속 저조한 성적에 머무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또, 내 작품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야 할 시기에 괜히 이 작품을 썼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사고를 전환해보려 노력했다. 연재 기회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한 작품 더 내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지금껏 연재 경험이 없었으니 새 경험을 한 셈이다, 어쨌든 상당한 선인세를 받았으니 그걸로 됐다 등등. 어떻게든 내 상심한 마음을 달래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독려를 해보려 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쉰답시고 늘어져 있으면서 머릿속은 그런 잡념들로 내내 복잡했다. 특히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곧바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편이라 잠도 잘 못 잤다. 분명 눈도 무겁고 정신도 멍하고 졸립건만, 누우면 두세 시간은 그냥 보내는 것이다. 잠 못 들고 누워만 있는 그 순간마저도 내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한마디로 혼자 안 좋은 생각만 온종일 굴리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꼴이었다. 안 되겠다 싶었을 때, 내가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은 바로 정신과 방문이었다.


사실 처음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부터 나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었다. 첫 작품을 출간하고 바로 예술인증명을 해놓은 덕이었다. 예술인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있어 지원했고, 12회기쯤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슬럼프로 인한 우울 증세가 있어 상담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약물 치료를 권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비교적 거부감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물론 약을 먹는다고 해서 단번에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거나 기운이 막 치솟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 혼자서 해결이 안 되는 감정이라면 약의 도움이라도 받아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약이 효과가 있었다. 내가 휴식을 휴식으로 보내지 못했던 건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이었지 않나. 약을 먹으니 생각이 차단됐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진 머릿속이 텅 비었고, 나를 우울로 밀어넣던 생각들이 끊기자 울적한 기분도 자연스럽게 나아졌다.


시기도 딱이었다. 당시 나는 가벼운 수술을 했었다. 연재 완결 이후 시점으로 미리 잡아놓은 수술 일정이었다. 수술을 한 다음에는 열흘가량 키보드를 사용하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어차피 키보드를 쓰지 못하니 쉬어야 하고, 때마침 생각을 차단해 머리를 비우니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좋았다. 우울한 생각 없이, 불안한 기분도 없이 폰게임을 하고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보내는 시간이 평온했다.


하지만 역시나, 부작용은 있었다.


약을 복용하고 한 달 반쯤이 되던 무렵이었다. 이제 슬슬 외전을 집필할 때가 다가왔다. 그런데 생각을 차단해줘서 마냥 좋던 그 약이 그때는 복병으로 변모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질 않는 것이다.


원래는 '이런 소재로 써볼까?' 하면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되겠다 - 하는 식으로 사고가 이어졌다. 그런 식으로 유연하게 연상되지 않더라도 '어떡하지?' 고민하다 보면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 다방면으로 떠올려보게 됐었다.


그런데 약을 복용하던 당시에는 '어떡하지?' 하면 '어떡하지?'만 백 번 생각했다. 도무지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질 못했다. 그저 1차원적인 사고에만 멈춰 있었다.


그때 그게 부작용이란 사실을 알았더라면 약을 바꿔나 봤을 텐데, 당시에는 약을 의심조차 못했다. 나에게 그 약은 좋지 않은 잡념을 멈춰주는 좋은 약이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외전을 써야 하니까, 간신히 물을 적신 수건을 또 쥐어 짜며 외전을 시작했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였을까. 마냥 조급하지는 않았다. 하루에 몇 백자 쓰다가 천 자를 간신히 넘겼다가, 이천 자씩, 삼천 자씩. 조금씩 쓰는 분량을 늘렸다. 애석하게도 겨우 구상한 내용조차 어떤 단어로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어떻게든 꾸역꾸역 또 썼다. 출간 일정에서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마감을 늦추는 과정이 있긴 했으나 어쨌든 계약된 분량만큼을 쳐내는 데는 성공했다.


지금에 와서는 약 때문에 더 힘든 작업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약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있기만 하다가 외전을 써볼 의지라도 생겼으니까. 그만하면 호전되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그 약은 마감을 치고도 한 달쯤 더 복용했다. 슬럼프와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 증세는 많이 나아진 참이었다. 그즈음 약 부작용으로 사고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증세도 나아졌으니 이만 단약을 하기로 했다.


물론, 단약을 했다고 머리가 비상하게 돌기 시작하는 건 아니었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슬럼프? 일단 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