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 터진 웹소설 작가의 발버둥3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무렵부터 나는 꾸준하게 집중력 문제를 느껴왔다. 예술인 지원으로 받은 심리상담에 가서도, 슬럼프와 번아웃을 타파하고자 정신과에 방문했을 때도 내 고민거리에는 늘 집중력 저하가 포함되어 있었다.
집중력 문제가 한창 심각하던 시기에는 내 스스로 성인 ADHD를 의심했었다.(내 주변에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본인이 ADHD가 아닌가 의심해보는 것 같긴 하다.) 상담기관, 정신과에 가서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두 곳 다 방식은 다르더라도 대답은 비슷했다.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려면 정밀한 검사가 필요한데, 굳이검사를 받을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 태도나 대화 양상 등 보여지는 여러 요소가 해당 증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결론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집중력을 문제삼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일단, 글이 써지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을 듯하다. 소재에 대한 불확신, 불확신으로 인해 떨어지는 내용의 명확도로 글 자체가 손에 붙질 않은 게 가장 큰 사유가 아니었을까. 손에서 술술 써지질 않으니 자꾸 한눈을 팔고, 한눈을 팔다 못해 자꾸만 자리를 이탈하는 등 산만한 행동을 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의심했던 증상은 아니라니 다행이지만 높은 집중력을 향한 나의 열망은 꺼지질 않았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이전에도 글을 쓸 때 매번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던 건 아니지만, 때때로 글이 잘 써지는 날이면 빠르게 원고를 끝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면 한 편을 뚝딱 써냈고, 소위 필을 받는 날에는 한 편을 쓰고도 또 두 시간만에 한 편을 더 써내기도 했었다.
작가마다 속도는 다르겠지만, 주로 하루에 한 편을 써내는 나에게는 종종 있는 그런 경험이 큰 쾌감을 안겨줬다. 반대로 집중 못 하고 하루 종일 한 편을 붙들고 있다가 잠들기 전에야 겨우 한 편을 써내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집중만 잘하면 두 시간에 끝낼 일을 온종일 붙들고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들을 이전부터 하고 있었다 보니 슬럼프를 겪으며 첫 문장 하나 써내지 않는 것또한 주의력이 떨어진 게 원인이 아닌가 했다. 그렇게 의심하기 시작하자 재택으로 글을 쓰는 내 주변 환경을 다시 둘러보게 됐다.
출퇴근이 따로 없다는 건 편하지만 그래서 방해 요소가 더 많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다. 빨래를 돌려놓고 글을 쓰다가 세탁기 완료음이 울리면 글을 놓고 빨래를 건조기에 옮겨놓으러 가는 거다. 건조기를 돌려놓고 돌아와서는 쓰던 글 흐름부터 파악하고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런 식으로 집안일을 겸하면서 자꾸만 흐름이 끊기는 일이 많았다. 글을 쓰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고양이 밥이 없어서 채워준다든가, 고양이가 와서 애교를 부리면 귀엽다고 한참을 또 만져준다든가. 집에는 방해 요소라고 여기면 방해 요소인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
또, 체력도 문제인 것 같았다. 나는 웹소설 작가 이전에도 재택을 했었는데, 1년 반즈음 집에서만 일하다 보니 체력이 바닥난 게 몸소 느껴졌더랬다. 집 근처 시장 20분만 돌고 와도 너무 피곤해서 낮잠에 빠질 정도였다. 그때 심각성을 느끼고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운동 강도를 조금 더 높여도 될 만큼 체력이 늘었다고 해도 딱 그만큼이었다. 운동 난이도를 올릴 만큼의 체력이 늘어난 거지, 실생활에서의 체력은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소소하더라도 꾸준한 외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공유오피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재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업무 공간을 분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정말 유명한데, 사실 그게 쉽지는 않다. 집에 빈 방이 있다면 작업실로 꾸미기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단 집을 두고 또 월세를 부담해야 하니 금전적인 부담이 되는 거다. 월세까지 냈는데 효과가 안 나오면 돈을 날리는 셈이 될까 봐 불안하기도 하고. 솔직히 나는 그래서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몰릴 대로 몰려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자 결심이 섰다. 굳건한 다짐과 달리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교통이 편한 곳에 있는 공유 오피스 위주로 알아봤지만 1인실을 찾기가 어려웠다. 코로나 영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싶은 곳은 다 만실이고, 방이 있대서 보러 갔더니 다 무너지게 생긴 곳이고 그랬다.
그래도 찾고 또 찾은 끝에 적당한 작업실을 찾았다. 날 좋을 때는 여유롭게 걸어갈 만하고, 버스를 타기에도 나쁘지 않은 위치였다. 1인실 치고 좁지도 않았고, 가격 또한 합리적이라 6개월 장기 임대로 할인을 받아 계약했다.
돈은 나가지만 그래도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고 하니 조금은 설렜다. 양해를 구하고 입실 하루 전날 미리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도 내내 신났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신작도 쭉쭉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복병이 찾아왔다.
코로나였다. 같이 사는 친구 중 하나가 확진을 받는 바람에 밀접 접촉자인 나도 덩달아 격리를 하게 됐다. 뭐, 모르는 척하고 나갈 수는 있었겠지만 밀접 접촉인 걸 알면서 대중교통이며 사무실을 누비고 다니기에는 양심에 찔렸다. 그래서 계약 첫날부터 사무실에 나가지 못했다.
차라리 그때 나도 확진이 됐으면 더 나았을 듯했다. 동거인의 확진으로 졸지에 격리된지 나흘 차. 그제서야 나도 확진이 됐다. 그때부터 일주일 격리를 하고 나니 거의 보름이 지나가 있었다. 작업실 계약 시작부터 한 달의 절반을 그냥 날려먹은 것이다.
보름을 날려먹기만 했으면 그나마 낫지. 코로나 후유증이 대단했다. 격리 기간에는 인후통만 조금 있고 말았는데, 이후에 체력이 극도로 저하된 건 물론이고 브레인포그가 어마어마했다. 정신과 약을 먹고 모든 생각이 차단되어 제대로 된 사고가 굴러가지 않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제야 좀 뭔가를 쓸 마음이 생겼던 나로서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이후에 겨우 작업실에 나가서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머릿속에 어떠한 문장이 맴도는데, 그게 구체화가 되질 않았다. 이 단어의 뜻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떠올린 어떠한 표현을 어떤 단어로 써야 할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언어 체계가 다 무너진 느낌이랄까.
작업실을 구할 때만해도 두세 시간 빡 집중해서 한 편을 쓰고 퇴근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취미삼아 어떤한 리뷰도 없이 혼자서 끄적끄적 다른 작품을 쓰며 다작을 해볼 원대한 꿈도 있었다. 그러나 둘 중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브레인포그에서 벗어나는 데만 또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니까. 정말 일이 안 되려니까 별별 상황이 다 안 따라주고 안 풀리는 것 같아서 꽤 울적했다.
그래도 들인 돈이 있는데 뭐라도 써야 했다. 그래서 내 선택은, 이전과 같았다. 잘 된 작품의 외전. 이미 설정이 다 있는 작품의 외전으로 손을 풀어보기로 했다.